시집『은자의 북』1992 77

<시> 세상은 깨어 있다

세상은 깨어 있다 洪 海 里 세상이 다 깨어 있구나 깨어 있어 모두 사기치고 있구나 화담이 명월에게 사기치고 욕심이 허심에게 소금이 맹물에게 이론이 실제에게 국물이 갈비에게 화염병이 돌멩이에게 내가 나에게 네가 너에게 눈으로 사기치고 몸으로 사기치고 세상은 깨어서 반짝반짝하는구나 말로 사기치고 생각으로 사기치고 세상은 화려하구나 황홀하구나 사기로 사기치고 있구나 어둠이 대낮에게 사기치고 진실이 거짓에게 사기치고 세상은 유쾌하구나 살맛나는 세상이구나 바람에게 사기치는 산이 있구나 하늘에게 사기치는 세상이 있구나 절망이 희망에게 사기치고 사랑이 배신에게 사기치고 삶이 죽음에게 사기치고 있구나 사기치는 즐거움으로 사는 세상이여 사기, 사기, 사기의 세상이여 다 깨어 있구나 시퍼렇게 깨어 있구나 세상은 깨어 세..

<시> 여가수에게

여가수에게 洪 海 里 한 곡조 잘 뽑기 위하여 수십 번, 아니 수천 수만 번 피를 토해야 하리 그렇게 거르고 거른 마지막 가락, 그 가락이 환상의 나라 착각의 시민을 잡는다 안개 짙은 거리에서 우리는 마약중독자가 되고 몽유병자가 되고, 그대는 세기의 최면술사 원격조종에도 문을 열고 내장을 드러내는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자동판매기 안개는 다시 는개로 내리고 사내들은 사타구니에 문신을 뜬다 검은 장미 봉우리를 하나하나 깊이깊이 박아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