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세란헌 洗蘭軒세란헌 홍해리(洪海里) 하늘이 씻은 너를 내 다시 씻노니 내 몸에 끼는 덧없는 세월의 티끌 부질없이 헛되고 헛된 일이 어리석구나 동향마루 바람이 언뜻 눈썹에 차다. *세란헌: 우이동에서 난을 기르고 있는 달팽이집만한 마루임.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4
<시> 초록빛 세상 초록빛 세상 洪 海 里 소쩍새 둘이둘이 쏘쩍이면서 밤새도록 그짓들 해쌓더니만 온산이 시퍼렇게 멍들밖에야 샅 아래 축축하니 단물이 올라 철쭉꽃 얼굴 벌개 고개 못 들고 피나게 울어지샌 긴긴 한밤도 오히려 바투바투 성이 덜차서 새벽길 발목잡고 놓지 못하나 허공 속에 집을 짓고 ..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4
<시> 청의출사詩 靑衣出社詩청의출사시 홍해리(洪海里) 아득한 하늘바다를 봉두난발의 파락호가 가고 있다 미움 하나 허공에 반짝하자 살기 띤 칼이 비명을 친다 움직이지 않는 바람 앞에 서서 남가일몽을 펼치느니 꿈에서 깨어난 듯 살 수 있을까 봉두난발의 파락호 하늘바다를 아득히 가고 있다.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3
<시> 가을 단상 가을 단상 홍해리(洪海里) 한때는 오로지 올라가기 위해 올라서기 위하여 올라갔었지마는 이제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 내려가는 일 아름답게 내려가는 일 산천초목마다 저렇듯 마지막 단장을 하고 황홀하게 불을 밝히니 하늘이 더 높고 화안하다 들녘의 계절도 무거운 고개를 대지의 가..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3
<시> 우이동 찬가 우이동 찬가 하루의 먼지를 털고 솔밭머리 이르면 북한산 어스름이 꼬리치는 저녁답 고개를 들면 슬프도록 흰 백옥의 이마에서 서늘한 바람이 내려 우리들의 안섶을 여며 주네 천 사람 만 사람의 꿈으로 서 있는 은빛 보드랍은 저 빛나는 몸뚱어리 하늘까지 맑은 피가 돌아 죽어 썩을 살 아닌 사랑으..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3
<시> 사랑詩 사랑詩 홍해리(洪海里) 사랑아 사랑아 잘못 지은 푸른 죄 나는 별과 별 사이를 건너 뛰었다 구름 위에 앉아 잠깐 쉬기 아득하여라 하늘자락 꺾인 풀꽃처럼 뭉개져 던져진 몸뚱어리 아득하구나 사랑이여.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3
<시> 지게 지게 홍해리(洪海里) 해종일 진달래 타는 구비구비 먼 고향집 싸릿문 들어서면 댓돌 옆 놋요강 위로 저녁놀처럼 스러지는 할아버지 기침소리 구멍난 검정 고무신 미끄러지며 알구지에 작대기 맞춰 서 있던 너의 등태 뒤에 꽂힌 녹슨 조선낫 하나 장가 못 간 노총각 넋두리 구성진 가락 지겟가지에 걱..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3
<시> 장미꽃 장미꽃 洪 海 里 햇빛도 네게 오면 궁핍한 아우성 처음으로 얼굴 붉힌 알몸의 비상 끝내 너는 싸늘한 불꽃의 해일인가 빨갛게 목을 뽑는 서녘 하늘 저녁놀. - 시집 『은자의 북』(1992)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3
<시> 말씀 하나 세워 놓고 말씀 하나 세워 놓고 洪 海 里 말씀 하나 세우나니, 가장 투명한 말 한마디 가장 가볍고 가장 무거운 그 말 처음이자 마지막인 그 말 나뭇이파리만한 그 말 탯줄 같고 굴레 같은 그 말 무지개 뿌리 같은 그 말 어제 오늘 내일인 그 말 죽어 한 알 사리일 그 말 나의 집인 그 말 산 같고 바다 ..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3
<시> 난 앞에 서면 난蘭 앞에 서면 홍해리(洪海里) 천상천하의 바람도 네 앞에 오면 춤, 소리없는 춤이 된다 시들지 않는 영혼의, 적멸의 춤이 핀다 별빛도 네게 내리면 초록빛 에머랄드 자수정으로 백옥으로 진주로 때로는 불꽃 피빛 루비로 타오르고 순금이나 사파이어 또는 산호 그렇게 너는 스스로 빛나는데 난 앞에 .. 시집『은자의 북』1992 2005.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