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1303

[스크랩] 다저녁때

다저녁때(치매행1) 시 : 홍해리 그림 : 김성로 아내가 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왜 가는지도 모른 채 그냥 집을 나섭니다 눈은 내리는데 하얗게 내려 길을 지우는데 지팡이도 없이 길을 나섭니다 닫고 걸어 잠그던 문 다 열어 놓고 매듭과 고삐도 다 풀어버리고 바람처럼 강물처럼 구름처럼 텅 빈 들판처럼 혈혈히....... 굽이굽이 한평생 얼마나 거친 길이었던가 눈멀어 살아온 세상 얼마나 곱고 즐거웠던지 귀먹었던 것들 다 들어도 얼마나 황홀하고 아련했던지, 빛나던 기억 한꺼번에 내려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사는 슬픈 꿈이 아름답고 아름다운 삶이 아득한, 아침에 내린 눈 녹지도 않은 다저녁때 아내가 또 길을 나섭니다. 출처 : 김성로(KIM SUNG RO) 글쓴이 : 솔뫼 김성로 원글보기 메모 :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김성로 [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45*45cm, 한지 위에 아크릴. 2007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시 : 洪海里 / 그림 : 김성로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 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