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 및 영상詩 1282

「역설」캘리그라피 : 채영조, 류연실

* 시수헌에서 채영조, 홍해리, 이동훈 시인. 2023 .01. 07. 역 설 홍 해 리 너 없이는 한 시도 못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니 찔레꽃 피우지 말아라 내 생각도 하지 말거라 네 하얀 꽃잎 상복 같아서 내 가는 길 눈물 젖는다 한갓된 세상 모든 것 있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어라 아픔도 때로는 얼마나 아름다우냐 발자국 남기지 말고 가거라 먼 길 갈 때는 빈손이 좋다 텅 빈 자리 채우는 게 삶이다 한때는 짧아서 아름다운 법이란다. - 시집 『바람도 구멍이 있어야 운다』(2016,도서출판 움).

한겨울 시편

한겨울 시편 洪 海 里 가야지 이제 가야지 하면서도 막상 떠날 생각 털끝만큼도 없는데 북한산 깊은 골짝 천년 노송들 가지 위에 눈은 내려 퍼부어 한밤이면 쩌억 쩍 뚜욱 뚝 팔 떨어지는 소리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더니 누구의 뜻으로 눈은 저리 내려 쌓이고 적멸의 천지에 눈꽃은 지천으로 피어서 우리들을 세상 밖으로 내모는가.

가을 들녘에 서서

가을 들녘에 서서 洪 海 里 눈멀면 아름답지 않은 것 없고 귀먹으면 황홀치 않은 소리 있으랴 ​ 마음 버리면 모든 것이 가득하니 ​ 다 주어 버리고 텅 빈 들녘에 서면 ​ 눈물겨운 마음자리도 스스로 빛이 나네. ​ 눈 감아도 누런 풍요가 보이고 귀 닫아도 풍년가 소리 들린다 가을엔 마음을 비워도 채워지는 것은 있나니 다 나누고 보니 넉넉함과 뿌듯함 텅 비어가는 것은 아니구나 [출처] 가을 들녘에 서서 / 홍해리|작성자 마리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