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불밝히기 불밝히기 홍해리(洪海里) 십자가를 피뢰침처럼 하늘 가까이 가까이 세워놓고 대낮에도 환하도록 불을 밝힌다 길잃은 어린 양들을 위하여 눈에 쉽게 띄이도록 불을 밝힌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불러 편히 쉬며 배불리도록 중국집 2층마다 간판을 달고 반짝반짝 네온싸인 불을 밝힌다 불쌍하고..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1
<시> 머리감기 머리감기 홍해리(洪海里) 가을이 오면 가장 완벽한 소우주에 가을이 오면 낙엽이 지듯 우수수 우수수 소리가 난다. 비듬의 조락 내 살의 뼈 뼈의 파편 파편의 날개 날개의 중량. 몇 가닥 머리칼의 부드러움 부드러움의 항변 항변의 절망 절망의 자유 자유의 피 피의 낙하. 비누로 문지르고 북��북적 ..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1
<시> 하늘보기 하늘보기 洪 海 里 처서 지나고 나서 오랜만에 밤하늘을 무심코 올려다보 았습니다. 지난 봄에 꺾어 던진 백매가지가 하늘로 날아 가 박혀 꽃잎들이 떨어지더니 하나하나 별이 되어 반짝 이고 있었습니다. 별빛별빛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다 죽 었다 썩었다 해도 죽지 않고 썩지 않고 반..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1
<시> 고기잡기 고기잡기 홍해리(洪海里) 한나절 물을 퍼내고 또 퍼낸다 허기지도록 퍼내야 보이는 하늘 하늘이 보여야 드러나는 바닥 약아빠진 놈들은 다 도망치고 미련하고 못난 놈들만 남아 진흙 속에 머릴 처박고 숨어버린다 송사리 미꾸라지 붕어 몇 마리 밤낮없이 잡히는 놈은 눈먼 등신들 둠벙마다 하늘을 봐..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1
<시> 남은 자리 남은 자리 홍해리(洪海里) 죽은 이는 말없이 떠나버리고 살아 있는 사람들만 뒤에 남아서 먼저 간 이를 이야기하며 화톳불 주위에 둘러앉는다 지글지글 불똥을 튀며 통나무는 타오르고 홧홧홧 어둠을 태우며 타오르고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기 마련 죽은 이만 불쌍하지 안됐어 하며 살아 있는 사람들..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1
<시> 시인이여 시인詩人이여 홍해리(洪海里) 요즘 詩들은 시들하다 시들시들 자지러드는 한낮 호박잎의 흐느낌 마른 개울의 송사리 떼 겉으로 요란하고 울긋불긋 시끄럽다 비맞은 보리밭처럼 일어서지 못하고 천둥 번개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미쳐 거리를 헤매는 이도 독주에 절어 세상을 잊는 이도 없..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1
<시> 이슬방울과 천둥소리의 입맞춤을 위하여 이슬방울과 천둥소리의 입맞춤을 위하여 홍해리(洪海里) 풀잎 끝 이슬방울 작은 나라 그대 천둥소리로 와 피리소리 피네 가슴속 구멍마다 보석 하나씩 하나씩 목구멍엔 바다 말라 불타는 갈대 바람소리 밤이면 보름달 품는 동박새 가슴 별 무수히 무수히 쏟아져 반짝반짝 쌓이네 그대 눈..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1
<시>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洪 海 里 독새풀 일어서는 논두렁 자운영꽃 같은 여자, 잔디풀 잠깨는 길가 키 작은 오랑캐꽃 같은 여자, 과수원 울타리 탱자꽃 같은 여자, 유채꽃 밭머리 싸리꽃 같은 여자, 눈 덮인 온실 속 난초꽃 같은 여자, 칼바람 맞고 서 있는 매화꽃 같은 여자, 산등성이 홀로 피어 있는..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0
<시> 사랑 小曲 사랑小曲 洪海里 간질간질 꿈질꿈질 둘레둘레 두근두근 망설망설 추근추근 힐끗힐끗 지분지분 소곤소곤 곰실곰실 조마조마 후들후들 토닥토닥 생긋생긋 끄덕끄덕 해작해작 후끈후끈 허청허청 아찔아찔 흐늘흐늘 꼬물꼬물 종알종알 꼬치꼬치 앙알앙알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0
<시> 포기 연습 포기연습 홍해리(洪海里) 한양대학 부속병원 905호실의 하얀 공간. 다 거두어 들인 들판 비끼어가는 가을햇살처럼 조금은 쓸쓸하고 담담하게 내가 둥둥 떠 있다. 녹색 수술복 금식 팻말. 하나씩 하나씩 비워내고 마지막 하나까지 비운 다음 눈 감고 실려가는 수술실은 머언 먼 우주의 별. 마침내 내가 ..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