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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

허수아비 홍 해 리 나이 들면 그리움도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 들면 무서운 것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막상 나이 들고 보니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빈 들녘에 홀로 서서 낡은 옷자락만 바람에 흐느낍니다 그래도 마음은 가득하니 짜장 부자입니다. - 시집 『정곡론』(2020, 도서출판 움) * 허수아비의 노래 그냥 그렇게 없이 살아도 정이 있었고 떡 한 조각도 서로 나누고 사는 재미가 있었다는 지난 시절이지만 풍요 속에 가난은 신의 균형일까. 이 넉넉한 물질 세상에 오히려 더 재미없다는 사람들의 윤택한 절규이다. 그리움과 무서움은 마음이 연한 감성의 자리라서 나이 들수록 고목처럼 마르고 거칠어지지만 나이 들어도 그리웁고 무섬타는 여린 마음도 있음이라. 그러나 텅 빈 들녘에 홀로 선 허수아비처럼 낡..

역설 또는 미완의 완성

역설 또는 미완의 완성 洪 海 里 1. 살날이 줄어들수록 하루는 그만큼 길어지네 갈 길은 멀고 할 일은 많은데 세상 사는 일 길고 짧은 일 그게 무엇인가 퍼져나갔던 꿈도 나이 들어 줄어들다, 끝내는 나 하나뿐 나 자신으로 끝나고 마네 2. 명작이라고? 걸작이라고? 세상에 걸작이 어디 있고, 명작이 어디 있는가? 그걸 만든 사람이 완성하지 못하고 손들고 버린 것일 뿐이지 만족해서 손 놓은 완성작일까 세상에 걸작은 없다 그것을 쓴 사람이나 그린 이가 살아 있다면 어찌 명작이고 걸작일 수 있겠는가 이미 쓰인 글, 그려진 작품에 붓을 대지 않는 이 시인인가? 화가인가? 하루가 너무 지루하게 긴데 살날은 얼마 남지 않았네. - 계간 『문학춘추』 2024. 여름호(제12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