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29

<시> 입하立夏

입하立夏 洪 海 里 새소리에서도 물빛 향기가 난다 연두 초록으로 날아오르는 산야 숲은 이미 감탄사로 다 젖은 밀림 무한 천공으로 가득 차는 저 광채! **************** 새벽을 적신 비가 고맙다. 때에 맞게 내려온 햇볕이 반가워. 무심코 지나치던 것이 새롭게 다가오는 날은. 초록 숲에 앉았던 바람이 보리밭을 출렁인다. 어떤 향기가 날까. 물에 기댄 실버들 흔들흔들 몸을 말린다. 간밤 연두와 초록을 건너던 꿈이 뻐꾸기 울음 물들었을까. 절기를 몸에 넣어주는 것은 하늘의 일이지만, 이 향기와 색깔을 쓰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내게 들어온 한 절기를 느낌표로 찍어 훗날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 금강. =========================================== * 2008...

<시> 산책

산책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살아 있는 책이다발이 읽고눈으로 듣고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느릿느릿,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한 발 한 발.    - 시집『독종』(2012, 북인)  - 월간《우리詩》2012. 8월호 * 스크린도어 앞에서 이 시를 접할 때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시는 시가 갖춰야 할 쾌락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을 모두 갖췄다. '산책'이라는 말에서 '돈을 주고 산 책',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산 책'을 떠올리며 교묘한 언어유희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쾌락적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아울러 산책을 '자연경'이라는 경전을 읽는 행위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며 '산책'뿐만 아니라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