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투명한 슬픔』1996

<시> 한강은 흘러가라

洪 海 里 2005. 12. 4. 16:52
한강은 흘러가라
 

고여 썩을 자리 씻어 흐르는
이 몸의 탯줄인 한강이여
어머니의 자궁이던 고향도
얼굴을 들여다보던 우물도
끝없이 가면 닿을 바다도
그대로 우리에겐 그리움이었지
늘 이쪽과 저쪽을 갈라 놓은 채
천 개의 달을 안고 흐르는
강은,
오늘도 우리들의 이야기를 반짝이면서도
세월을 계산하지 않는다
산길을 돌아들기도 하고
산그림자 품어 안고 흘러가면서
표정을 지으려 하나
바다는 아득히 멀다
한과 슬픔을 풀어내고
한없이 흘러가 하나가 될 바다
지금은 죽음만을 쓸쓸히 껴안고
시대의 온갖 위선과 무지에 눌려
반신불수로 길게 누워 있다
맑은 물에 마음 한번 헹궈 못 보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면서
저 흐르는 소리 듣지도 못한 채
흐르는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썩은 웅덩이, 병든 강이 되어 버린
하나의 강, 한의 강, 한강이여
언제 바다에 가 닿는가
언제나 바다에 가 푸르게 살아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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