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은빛 속의 파스텔 은빛 속의 파스텔 홍해리(洪海里) 겨우내 마른 몸으로 텅텅 비어서 홀로 서기조차 겨운 빈 몸으로 천지가 악기 되어 스스로 울더니 안개 속에서 뱀들도 옷을 벗고 연한 속살을 대지 위에 대인다 봄비 내려 촉촉히 젖은 맨살로 바람은 우우우 몰려와 꽃나무마다 껍질 벗길 때 꽃잎 바른 창호지 문살 사..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저 혼자 가는구나 저 혼자 가는구나 홍해리(洪海里) 살이 살을 만나 살불을 밝힌들 바람보다 가벼워 바람만도 못한 것을 저들은 사랑이라 사뭇 야단이다만 사랑이 사랑인들 어쩌겠느냐 사랑으로 천년을 밝히고 사랑으로 만리 밖까지 밝히겠느냐 풀꽃보다 못한 사랑 유행가만도 못한 사랑이여 네 가슴에 등불 하나 켜고..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밤느정이 늘어질 때 밤느정이 늘어질 때 홍해리(洪海里) 무시로 불끈불끈 일어서는 부사리 녹음방초 따라 밤숲에 길이, 길이 나고 천방지방 수작하는 홀아비 바람 이빨 시퍼런, 시퍼런 저 비린내.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시치詩痴 시치詩痴 홍해리(洪海里) 가을이 와도 내 나뭇가지에 열매 하나 없네 달덩이 같은 시 한 알 맺지 못하고 푸른 하늘만 바라보며 손 흔들고 서서 몸바꾸는 산천초목에 마음 뺏기는 나는 시치, 못난 시치일 수밖에야 가을이 와도 시 한 알 맺지 못하는.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마지막 고백 마지막 고백 홍해리(洪海里) 엊저녁 밤새도록 인수봉과 연애를 하고 백운대랑 사랑을 하여 애 하나 낳아 흰구름 배를 지어 초록 바다에 띄우자 우주가 춤을 추며 빙글빙글 돌았다. 사랑이란 지지고 볶고 긇이는 일 삶이란 굽고 삶고 튀기고 찌는 일 오늘은 그대 가슴 깊숙이 등 하나 달고 ..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뻐꾹새 비 개이자 뻐꾹새 뒷산 허무네 허문 산 물어다 옮기어 놓고 소리 속에 숨어서 하늘 흔들다 푸른 숲 속 궁전 지어 숨어 버렸네.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서울 낙타 서울 낙타- 바보에게홍 해 리 모래폭풍 속으로 떨어지는 태양뜨겁게 쏟아지는 물없는 바다를막막히 걸어가는 머나먼 사막길.있는 짐 다 지고 휘여휘여 등이 굽은끝없이 끝없이 가는 서울 사막길 낙타를 지고 가는 선한 그 사람.- 시집 『난초밭 일궈 놓고』(1994)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비유의 칼 비유의 칼 홍해리(洪海里) 꽃이 내뿜는 칠흑의 어둠이다 다이아몬드를 자르는 유리칼이다 가을 하늘의 잔인한 투명의 절망 낚시에 걸린 대어를 잡고 있는 미늘 촌철살인이다.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귀뚜라미 귀뚜라미 홍해리(洪海里) 저 놈은 무슨 심사로 어쩌자고 밤새도록 날새도록 목을 놓아 남의 잠을 끌어다 별로 띄울까 단풍잎 지는 소리 이슬 듣는 소리에 천지가 더욱 넓구나 한잔 술 앞에 하고 혼자 취하니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저 울음소리…… 목에 밟히고 가슴에 쌓이는 별 지는 소리.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
<시> 그대는 그대로 그대는 그대로 홍해리(洪海里) 다이아몬드는 밖으로 맴돌지 않고 항상 마그마 속에 박혀 있다 우주의 중심이다 한의 결정체, 그 초점이다 텅 빈 생각을 가르는 번개다 그대는 파색으로 사는 내 삶의 中心 가슴의 宮 한가운데 불타오르는 核 그 폭발이다.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