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얀 고독 하얀 고독 홍해리(洪海里) 너는 암코양이 밤 깊어 어둠이 짙을수록 울음소리 더욱 애절한 발정난 암코양이 동녘 훤히 터 올 때 슬슬슬 꼬리를 감추며 사라지는 밤새도록 헤매다녀 눈 붉게 충혈된 새벽 이슬에 젖은 털을 털며 사라지는 비릿한 발걸음 유령 같은.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7
<시> 山茶花 山茶花 홍해리(洪海里) 바다로 간 사내들 길 닦아 주려 넋이라도 저승 가 편히 쉬도록 오동도 떼과부들 꽃등을 밝혀 바다 향해 소리치다 목이 터졌네.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7
<시> 겨울바다에 가서 겨울바다에 가서 홍해리(洪海里) 세월이 무더기로 지는 겨울바다 아득한 물머리에 서서 쑥대머리 하나 사흘 밤 사흘 낮을 이승의 바다 건너만 보네 가마득하기야 어디 바다뿐일까만 울고 웃는 울음으로 빨갛게 타는 그리운 마음만 부시고 파도는 바다의 속살을 닦으며 백년이고 천년이고 들고 나는데..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6
<시> 청주 가는 길 淸州 가는 길 洪 海 里 플라타너스 기인 터널을 지나면 내 고향 淸州가 배처럼 떠 있고 상당산성 위로 고향 사람들은 만월로 빛난다 봄이면 연초록 연한 이파리들이 손을 모아 굴을 만드는 서정抒情 여름이면 초록빛 바닷속 아늑한 어머니 자궁으로 넉넉히 새끼들을 기르고 가을이면 서걱이는 갈빛 포근한 안개가 금빛 들을 감싸 안는 풍요豊饒 겨울이면 맑은 뼈마디로 장성한 자식들을 떠나 보내는 어버이처럼 흰눈을 쓰고 서 있는 고고孤高 플라타너스의 연륜의 이마 그 밑을 지나 고향에 닿으면 늘 그렇듯 무심천 물소리처럼 우암산 바람결처럼 비인 듯 충만한 그곳 사람들.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6
<시> 다시 보길도에서 다시 보길도에서 홍해리(洪海里) 노화도 이목에서 맑은 물로 마음 한번 헹구고 청별나루에 내리면 이별을 안고 맞는 적자산 이마 아래 젖은 머리 쳐들고 꺼이꺼이 꺽꺽꺽 우는 물결아 발목 잡고 매달리는 푸른 치맛자락도 예송리 바닷가 검은 자갈도 중리 맑은 모래밭이나 선창바다도 팽나무 감탕나..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6
<시> 쓴맛에 대하여 쓴맛에 대하여 洪 海 里 사람들은 단 것을 좋아하지만 맛의 근본은 쓴맛일시 혀끝으로 촐랑대는 단맛에 빠진 요즘 세상일이 다 그렇다 혀끝으로 시작하고 그것으로 끝내면서 그곳에서 놀고 있다 단맛이란 맛있다는 말과 동의어지만 어찌 단맛이 맛의 전부일까 삶의 은근한 맛은, 아니 멋..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6
<시> 단순한 기쁨 단순한 기쁨 홍해리(洪海里) 나이들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희미해져도, 보이는 것이 더 많고 들리는 것이 더 많네. 둔해지는 몸으로 느끼는 것이 더 많은, 이 투명한 세상! 살아 있다는 단순한, 이 기쁨.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6
<시> 양파는 없다 양파는 없다 홍해리(洪海里) 양파를 찾으려고 비늘잎을 벗긴다 투명한 마른 잎을 벗기고 맑은 살 연한 잎을 벗기고 벗기고 벗기고 또 벗기고 또 벗겨도 양파는 오직 껍질뿐 양파는 없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세상둘레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랑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고 사랑은 사랑이란 말 속에서만 ..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6
<시> 나무들은 둥글게 나일 먹는다 나무들은 둥글게 나일 먹는다 홍해리(洪海里) 날마다 해 떠오르기 전 새들이 어둠을 털어 졸립고 피곤한 선잠을 깨우면. 나무들은 천의 날개를 달고 가볍게 아주 가볍게 날아 올라서 둥근 해를 품어 안는다 잠 깨어 부푸는 아침 구름도, 가지마다 사태지는 초록빛 기운 우리가 갇힐 곳이 비록 무상한 ..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6
<시>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 용담龍膽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 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 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 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 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 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 달빛에 젖은.. 시집『난초밭 일궈 놓고』1994 200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