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맥문동麥門冬 맥문동麥門冬 洪 海 里 연보랏빛 꽃방망이 하나씩 들고 아니, 온몸이 꽃몽둥이가 되어 벌 떼처럼 일어서고 있는 한여름날 늦은 오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내 그립다는 말조차 모르는 사내 흠씬 두들겨 주기라도 할 듯이. - 시집『독종』(2012, 북인) 시집『독종毒種』2012 2011.08.07
<시> 소금과 시 소금과 시 洪 海 里 소금밭에 끌려온 바다가 햇볕과 바람으로 제 몸을 다 버리고 나서야 잘 여문 소금이 영롱하게 피어난다 맛의 시종인, 아니 황제인 소금의 몸에서 밀물과 썰물이 놀고 있는 소리 들린다. 소금을 기르는 염부의 등을 타고 흘러내린 수천수만 땀방울의 울력으로 바다의 .. 시집『독종毒種』2012 2011.07.27
<시> 달을 품다 달을 품다 洪 海 里 눈이 부셔 잠을 깨니 미끈유월 스무하루 새벽 한 시 눈이 아팠다 열려진 창문으로 달이 들어와 내 얼굴을 바짝 들여다보고 있었다 매화나무 가지 사이로 걸어온 것이었다 단잠에 든 내 눈을 깨우고 슬몃 눈웃음을 띄고 있다 내가 못 가니 네가 왔구나 그래 나는 무작정.. 시집『독종毒種』2012 2011.07.21
<시> 추락 추락 - 박흥순의 '천진의 인상'에 붙여 洪 海 里 새가 떨어졌다. 양 떼를 몰고 가는 미루나무 가로수 길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솔거의 노송이 아닌 미루나무에 앉으려다 탁! 하고 그림에 부딪힌 새, 툭! 떨어졌다 잠깐 정신을 놓고 적막처럼 찌부러진 새 정신이 들자 이내 날아오른다 제 세상은 하늘이지 가난한 화실이 아니란 듯, 새가 날아갔다. * 「천진의 인상」(2003년) : 박흥순 화백의 작품. (2008. 8.) 시집『독종』(2012, 북인) 시집『독종毒種』2012 2011.07.18
<시> 오, 세상 사람들! 오, 세상 사람들! 洪 海 里 시시덕이 귀머거리 하루살이 응석받이 고집쟁이 조방꾸니 우두머리 가난뱅이 돌대가리 줏대잡이 두루춘풍 눈끔쩍이 벌거숭이 미련쟁이 꼽사등이 동냥아치 앉은뱅이 장물아비 말썽쟁이 변덕쟁이 꼭두각시 코맹녕이 무식쟁이 가시버시 어지자지 사랑지기 팔방.. 시집『독종毒種』2012 2011.07.14
<시> 쥐고기를 좋아하십니까 쥐고기를 좋아하십니까 洪 海 里 쥐띠 해라고 쥐들이 전신 보시를 한다 쥐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쥐코밥상에 만족해야 하는 백성들이 비싼 새우만 좋아해서 쓰겠는가 여성들의 미용과 다이어트에 그만이고 남자들의 정력을 끝내주는 맛좋은 쥐고기도 좀 드셔 보라고 생쥐깡을 새로 .. 시집『독종毒種』2012 2011.07.11
<詩> 독종毒種 독종毒種 洪 海 里 1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독이다 물고기 가운데 맛이 가장 좋은 놈은 독이 있는 복어다 2 그러나 가장 무서운 독종은 인간이다 그들의 눈에 들지 마라 아름답다고 그들이 눈독을 들이면 꽃은 시든다 귀여운 새싹이 손을 타면 애잎은 손독이 올라 그냥 말라 죽는다 그들이 함부로덤부로 뱉는 말에도 독침이 있다 침 발린 말에 넘어가지 마라 말이 말벌도 되고 독화살이 되기도 한다 3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은 독버섯이고 단풍이 고운 옻나무에도 독이 있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독종이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하면서도 독종이 있으니 바로 인간이라는 못된 종자이다. 4 인간은 왜 맛이 없는가? - 시집『독종』(2012, 북인) * 시를 받아 적고 정돈하려는데 제목이 「중독」으로 적혔다. 「독종」에 한자 표기.. 시집『독종毒種』2012 2011.06.24
<시> 만재도晩才島 만재도晩才島 洪 海 里 먼 바다 한가운데 꼭꼭 숨겨 놓은 쬐끄만하고 조용한 '섬이[瑞美]야' 또는 '서미西眉야' 하고 부르면 얼굴 붉혀 '응!' 하고 다가오는 애첩 너에게 가고 싶다 눈썹이 푸르고 이마가 서늘한. - 시집『독종』(2012, 북인) 시집『독종毒種』2012 2011.05.19
<시> 겨울 놀 지다 겨울 놀 지다 洪 海 里 누가 망치를 내리치고 있었다 그때마다 바닷속으로 하릴없이 박히는 거대한 황금 기둥 거꾸로 보면 거대한 둥근 불꽃을 누가 바닷속에서 떠받들고 있었다 쩌릿쩌릿 옆구리에 경련이 왔다 황홀이었다 절정이었다 막장은 얼마나 먼가 우주 인력으로 끓어오르는 막.. 시집『독종毒種』2012 2011.05.19
<시> 세상의 아내들이여 세상의 아내들이여 洪 海 里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세상의 아내들이여 오빠는 오라버니의 어린이 말이요 오라버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남녀가 만나면 모두가 오빠가 되는 것인지 한배에서 먼저 태어난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 요즘 젊은 아내들은 한살되고 나서도 남편을 오빠, 오빠, 하고 징그럽게 부른다 한집에서 한솥엣밥 먹고 살다 보면 아내는 허리 없는 아줌마가 되고 길짐만 지던 남편은 아저씨가 되고 만다 우리 아저씨 우리 아저씨 하고 밀어내는 공동 소유의 촌수로 바뀌게 된다 몸이 가까울 때는 남매였던 사이 몸이 멀어지다 보니 관계도 뜸해져 항렬行列이 또 바뀌어 아저씨가 되고 만다 한솥밥 먹고 송사할 일도 아닌데 부부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늙으면 아기가 된다 하니 아저씨가 더 나이를 먹으면 우리 아.. 시집『독종毒種』2012 2011.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