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92

<시> 추락

추락 - 박흥순의 '천진의 인상'에 붙여 洪 海 里 새가 떨어졌다. 양 떼를 몰고 가는 미루나무 가로수 길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솔거의 노송이 아닌 미루나무에 앉으려다 탁! 하고 그림에 부딪힌 새, 툭! 떨어졌다 잠깐 정신을 놓고 적막처럼 찌부러진 새 정신이 들자 이내 날아오른다 제 세상은 하늘이지 가난한 화실이 아니란 듯, 새가 날아갔다. * 「천진의 인상」(2003년) : 박흥순 화백의 작품. (2008. 8.) 시집『독종』(2012, 북인)

<詩> 독종毒種

독종毒種 洪 海 里 1 세상에서 제일의 맛은 독이다 물고기 가운데 맛이 가장 좋은 놈은 독이 있는 복어다 2 그러나 가장 무서운 독종은 인간이다 그들의 눈에 들지 마라 아름답다고 그들이 눈독을 들이면 꽃은 시든다 귀여운 새싹이 손을 타면 애잎은 손독이 올라 그냥 말라 죽는다 그들이 함부로덤부로 뱉는 말에도 독침이 있다 침 발린 말에 넘어가지 마라 말이 말벌도 되고 독화살이 되기도 한다 3 아름다운 색깔의 버섯은 독버섯이고 단풍이 고운 옻나무에도 독이 있다 곱고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독종이다 그러나 아름답지 못하면서도 독종이 있으니 바로 인간이라는 못된 종자이다. 4 인간은 왜 맛이 없는가? - 시집『독종』(2012, 북인) * 시를 받아 적고 정돈하려는데 제목이 「중독」으로 적혔다. 「독종」에 한자 표기..

<시> 세상의 아내들이여

세상의 아내들이여 洪 海 里 남편을 오빠라 부르는 세상의 아내들이여 오빠는 오라버니의 어린이 말이요 오라버니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남녀가 만나면 모두가 오빠가 되는 것인지 한배에서 먼저 태어난 남자와 결혼을 했는지 요즘 젊은 아내들은 한살되고 나서도 남편을 오빠, 오빠, 하고 징그럽게 부른다 한집에서 한솥엣밥 먹고 살다 보면 아내는 허리 없는 아줌마가 되고 길짐만 지던 남편은 아저씨가 되고 만다 우리 아저씨 우리 아저씨 하고 밀어내는 공동 소유의 촌수로 바뀌게 된다 몸이 가까울 때는 남매였던 사이 몸이 멀어지다 보니 관계도 뜸해져 항렬行列이 또 바뀌어 아저씨가 되고 만다 한솥밥 먹고 송사할 일도 아닌데 부부란 혈연으로 맺어진 사이는 아니지만 늙으면 아기가 된다 하니 아저씨가 더 나이를 먹으면 우리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