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 洪 海 里 싸락눈 싸락싸락 싸르락싸락 눈 내려 지상에 백지를 깔아주자 수천수만 마리의 황태가 눈도 내려깔지 않고 몸뚱어리 흔들어 유서를 쓰고 있다. 바닷속에서 그리도 유연하게 흐르던 초서 지상에서는 왜 이리 뻣뻣하게 힘이 드는지 꼬리지느러미의 글씨마다 뼈가 솟는다. 상덕 하덕에 코를 꿰인 채 눈발은 딱 벌린 아가리로 무작정 들어가고 마침내 온몸의 검은 피 다 쏟아낸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로 마지막 한 자 한 자 휙휙 적다 눈이 오지 않는 한밤이면 황태는 싸늘하게 죽은 작은 별들을 몸으로 맞아들여 따뜻하게 품어 준다. 저 숱한 별들이 황태의 몸속에서 간절하고도 도저한 힘이 되어 칼바람에 흔들리며 쓰는 일필휘지, 조상들의 유서가 깊은 이 골짜기에서 온몸에 문신으로 새기고 있다 얼어붙은 유서를. -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