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콩 콩 洪 海 里 도리깨에 두들겨 맞는 콩꼬투리 콩콩 튀어나가는 콩, 콩, 콩 먹고 살기 힘들다고 콩 튀듯 버럭버럭 화를 내는 사내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콩이야 팥이야 할 것 없다 그러다 콩고물은 고사하고 콩가루 된다 콩노굿 일 때 콩밥먹을 일 있겠느냐 오늘은 콩나.. 시집『독종毒種』2012 2012.03.10
<시> 유서 유서 洪 海 里 싸락눈 싸락싸락 싸르락싸락 눈 내려 지상에 백지를 깔아주자 수천수만 마리의 황태가 눈도 내려깔지 않고 몸뚱어리 흔들어 유서를 쓰고 있다. 바닷속에서 그리도 유연하게 흐르던 초서 지상에서는 왜 이리 뻣뻣하게 힘이 드는지 꼬리지느러미의 글씨마다 뼈가 솟는다. 상덕 하덕에 코를 꿰인 채 눈발은 딱 벌린 아가리로 무작정 들어가고 마침내 온몸의 검은 피 다 쏟아낸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로 마지막 한 자 한 자 휙휙 적다 눈이 오지 않는 한밤이면 황태는 싸늘하게 죽은 작은 별들을 몸으로 맞아들여 따뜻하게 품어 준다. 저 숱한 별들이 황태의 몸속에서 간절하고도 도저한 힘이 되어 칼바람에 흔들리며 쓰는 일필휘지, 조상들의 유서가 깊은 이 골짜기에서 온몸에 문신으로 새기고 있다 얼어붙은 유서를. - 시집.. 시집『독종毒種』2012 2012.03.08
<시> 난蘭과 수석壽石 난蘭과 수석壽石 洪 海 里 한때 나는 난초에 미쳐 살았다 그때 임보 시인은 돌을 안고 놀았다 내가 난을 찾아 산으로 갈 때 그는 돌을 찾아 강으로 갔다 내가 산자락에 엎어져 넝쿨에 긁히고 있었을 때 그는 맑은 물소리로 마음을 씻고 깨끗이 닦았다 난초는 수명이 유한하지만 돌은 무한.. 시집『독종毒種』2012 2012.02.18
<시> 눈 내린 날 눈 내린 날 洪 海 里 등이 시려 등 하나 내겁니다. 세상을 따뜻하게 밝혀주는 아주 작은 것, 기댈 어깨 비벼 댈 언덕 있어 행복합니다. 우두커니 서 있던 시린 마음 하나 덜어내고 찬 손으로 막걸리 한 대접 대접하고 싶습니다. 흰눈이 소복소복 쌓인 들녘 가만히 바라다보면, 그냥 가득해집니다. - 시집『독종』(2012, 북인) * https://cafe.daum.net/jinkyeong100에서 서 옮김. 시집『독종毒種』2012 2012.01.25
<시>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그 사람 이름이 뭐더라! 洪 海 里 휴대전화를 냉장고 안에 넣어 놓고 줄곧 찾는다는 여자 버스 타고 나서 놓고 온 지갑을 찾는 사내이야기를 듣긴 했지만,무릎 뒷쪽은 오금 또는 뒷무릎팔꿈치 안쪽은 팔오금이라 하는데어깨 안쪽 털이 난 곳을 뭐라 하지'겨드랑이'가 어딜 가 숨어 있는지사흘 낮 사흘 밤을 쥐어짰는데다음 날 또 잊어버렸다조금 전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손에 든 물건의 명칭도 떠오르지 않는다어제 함께 술 마신 친구도 누군지 모르겠다방금 들은 것도 금방 잊어버리고한 말 할 말도 기억나지 않는다시끄러운 세상이 싫어서일까조용히 살고 싶어서일까한적한 시골에 배꼽마당이라도 마련하고마음껏 거닐며 놀아나 볼까, 그런데그곳이 어디인지 생각나지 않는다오래된 나의 오늘이 깜깜하기 그지없다. - 시집『독종』(.. 시집『독종毒種』2012 2012.01.13
<시> 눈 내린 아침에 * 銀河 님의 작품. 눈 내린 아침에 洪 海 里 마음이 너무 무겁고 몸도 많이 어두웠구나. 이제는 빈 그릇이 되어, 쓸지 않은 눈밭으로 내 안의 지옥을 찾아, 점 하나 찍고 선 하나 그을 밖에야! - 시집『독종』(2012, 북인) 시집『독종毒種』2012 2012.01.10
<시> 매미껍질 매미껍질 洪 海 里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뜻 그런 생각이 났다 불쑥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생각이란 가끔 들고 나며 떠오르는 가벼운 것이다 바닷물이 들고 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철이 들고 나는 것이 하나이듯 생각이 들고 나는 것도 같다. 보는 것도 눈만이 아니다 눈보.. 시집『독종毒種』2012 2012.01.09
<시> 발자국에는 발 자국이 없다 발자국에는 발 자국이 없다 洪 海 里 먼 길을 허영허영 예까지 왔다 한평생 족대질에 눈먼 피라미 몇 마리나 잡았던가 하루하루 저문저문 저물다 보니 길 아닌 길 없고 길인 길이 없었다 겨우 사는 시늉이나 내다 끝내고 마는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니어서 물 마르고 바람 잠든 허허한 골.. 시집『독종毒種』2012 2012.01.02
<시> 집을 수리하며 집을 수리하며 洪 海 里 늦은 가을날 유방도 심장도 자궁도 다 버린 앙상한 몸 퀭한 가슴에 찬바람이 와 젖는 폐허에 배를 대고 십팔박十八泊을 했다 나도 집처럼 금 가고 이 빠진 늙은 그릇 한평생 채웠어도 텅 빈 몸뚱어리였다 집도 비어서야 비로소 악기가 되었다 바람이 지나가면 노.. 시집『독종毒種』2012 2011.12.14
<시> 쉿! 쉿! 洪 海 里 한 자루의 명검名劍을 짓기 위하여 무쇠를 수천수만 번 불 속에 넣어 다지고 찬물에 집어넣어 담금질하며 칼을 빚는 장인은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를 모아 두드리고 두드린다 하늘과 땅이 하나 될 때 마침내 칼은 빛을 발한다 날이 하나인 도刀는 상대를 베기 위한 것이나 양.. 시집『독종毒種』2012 201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