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넉넉낙낙 - 知音 넉넉낙낙 - 知音 洪 海 里 물은 산그림자만 씻고는 산을 두고 가면서도 가지 못한다. 됐다, 가거라! 산은 하지 않은 기침소리로 말하지만, 만남이 곧 떠남이란 걸 가르치려고 산과 내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산에 들어 물을 바라보던 게으른 이 하나 있어 죽기 좋은 자리 정자를 짓고, 물소리에 마음 닦고 바람으로 귀를 채우며 자락정自樂亭이라 이름했다 한다. 고산유수高山流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 시집『독종』(2012, 북인) 시집『독종毒種』2012 2012.05.12
<시> 시가 죽어야 시가 산다 시가 죽어야 시가 산다 洪 海 里 시를 쓰지 마라, 시를 죽여라 시를 쓰면 시는 없다 시가 죽은 자리에 꽃이 핀다 죽어야 사는 것이 바로 시다 사랑을 나누는 일도 그렇다. - 시집『독종』(2012, 북인) * 주장하고 강요하고 심지어 윽박지르고 더구나 우리말로 쓴 글이로되 알아들을 수 없는 .. 시집『독종毒種』2012 2012.05.07
<시> 덤덤담담 덤덤담담 洪 海 里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신다 바람 불면 귀를 열고 눈 내리면 부처 된다 졸리면 자고 일어나선 발바닥을 두드린다 보고프면 만나고 아니면 그만이다 꽃이 피면 한잔하고 새가 울면 춤을 춘다 뒤진들 어떻고 뒤쳐진들 어떠랴 느릿느릿 서두를 것 하나 없다 마음.. 시집『독종毒種』2012 2012.05.03
<시> 숯 숯 洪 海 里 나무의 사리 썩지 않는 투명한 영혼 칼칼한 정신의 다이어몬드 죽어서 다시 사는 황홀, 또는 연민 - 시집『독종』(2012, 북인) 시집『독종毒種』2012 2012.04.21
<시> 산경山經 산경山經 洪 海 里 술에 취해 정신을 잃어버려도 집을 찾아오는 건 바로 발이다 발바닥에 입력된 산경표가 있어 좌우 산경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대문 앞에 와 있다 몸의 바닥인 발은 위대하다, 휘적휘적 흔들흔들. - 시집『독종』(2012, 북인) 시집『독종毒種』2012 2012.04.12
<시> 청명시편淸明詩篇 청명시편淸明詩篇 洪 海 里 시의 첫 행을 찾아내듯 봄은 그렇게 온다 첫 행은 신의 선물이다 봄도 첫 행도 첫 입맞춤처럼 어렵게 온다 힘들게 와서 오히려 다디달다 신이 내려주는 은총일까 밤 새워 끙끙대며 애 낳는 일일까 헛구역질을 하다 하다 몸푼 아낙처럼 꼬물꼬물 기어다니는 첫 .. 시집『독종毒種』2012 2012.04.08
<시> 청명 청명淸明 洪 海 里 봄이 오자 몸이 점점 가벼워진다 속에 뭔가 있어 땅도 슬슬 솟아오르니 곤줄박이 꽃마리 오목눈이 제비꽃 누군들 가슴 설레고 두근대지 않겠느냐 삶이란 스스로 자신을 세워가는 일, 금방 꽃비 내려 주체하지 못할 텐데 달뜨는 마음 어쩌지 못하는 사랑아 무작정 봄을 .. 시집『독종毒種』2012 2012.04.04
<시> 매화꽃 피고 지고 매화꽃 피고 지고 洪 海 里 심학규가 왕비인 딸 청이 앞에서 눈을 끔쩍끔쩍하다 번쩍 세상을 보듯 매화나무가 겨우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아니라 천 등 만 등이 하나 둘 켜지면서 가지마다 암향暗香이 맑고 푸르다 다글다글 꽃봉오리가 내뿜는 기운으로 어질어.. 시집『독종毒種』2012 2012.03.30
<시> 매화, 눈뜨다 매화, 눈뜨다 洪 海 里 국립4·19민주묘지 더디 오는 4월을 기다리는 수십 그루 매화나무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다 지난여름 삼복 염천의 기운으로 맺은 꽃망울 4월이 오는 길목에서 그날의 함성처럼 이제 막 터지려 하고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심상찮다 그날 젊은이들.. 시집『독종毒種』2012 2012.03.30
<시> 봄날 봄날 洪 海 里 아득하더니 아련하더니 슬슬슬 풀리는 여린 햇살로 나른나른 흐르는 물소리로 스멀스멀 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싸목싸목 번지는 물안개처럼 수런수런거리다 아슴아슴 일어서다 가야금 현 위를 사뿐사뿐 다니면서 이 현 저 현 통통통 튀어 다니면서 순식간에 금빛으로, 은빛.. 시집『독종毒種』2012 2012.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