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92

<시> 망망 - 나의 詩

망망茫茫 - 나의 詩 洪 海 里 널 관통하는 총알이 아니라 네 가슴 한복판에 꽂혀 한평생 푸르르르 떠는 금빛 화살이고 싶다 나의 詩는. - 시집『독종』(2012, 북인) [시평] 시를 공부하던 젊은 시절, ‘시’를 생각하면, 마치 하늘 어디에선가 망망의 몸짓으로 떨어지는 듯, 시는 우리에게 그렇게 다가오곤 했다. 삶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어느 한 순간 세상의 모든 것이 그 절정이듯 다가오는, 그러한 순간들이 조각조각 모이고 모이어 우리의 한 생애를 이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빚어낸 자신의 분신과 같은 ‘시’. 독자에게 그 시는 다만 가슴을 뚫고 관통해 나가는, 그래서 한 순간 뻥 하는 감동만을 주는 그런 시가 아니라, 그 가슴에 박혀 한평생 부르르 떠는, 그리하여 늘 그..

<시> 우이동솔밭공원

우이동솔밭공원 洪 海 里 백년 묵은 천 그루 소나무가 방하착하고 기인 하안거에 들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나무속 결 따라 신들의 궁전으로 가는 길 울려나오는 금강경의 물결도 숨죽이고 흐른다 수천수만 개의 푸른 붓으로 비경秘經을 새기고 있는 노스님의 먹물은 말라붙어 버렸다 땅속 천 길 이엄이엄 흐르는 천의 냇물이여 내 마음의 다랑논에 물꼬를 열어 다오 바람의 땅 낮은 곳을 따라 흐르는 온전한 물소리 잠깬 물고기 한 마리 날아올라 천년 세월을 면벽하고 나서 쇠종에 매달리니 바람이 와! 화엄華嚴의 춤을 춘다 무거운 침묵으로 빚은 야생의 시편들 눈 밝은 이 있어 저 바람의 노래를 읽으리라 귀 밝은 이 있어 저 춤을 들으리라 마음 열고 있는 이 있어 물처럼 흘러가리라 저들 나무속에 숨겨진 비경을 나 어이 독해하리 ..

<시> 수박을 깨자

수박을 깨자 洪 海 里 박수를 치면 손에서 수박 냄새가 난다 박수박수박수박수박수박! 짝이 없으면 짝짝 소리도 나지 않는다 박수가 무녀를 만나 수박을 낳는다 자살을 입에 달고 못 죽어서 한이던 여자 한풀이하고 나서 이제는 살자고 야단이다 그렇다 무엇이든 안받음하는 법이라서 살다 보면 살맛나는 맛살도 만나게 되지 죽자고 일만 하다 덜컥 죽어버린 사내 옆집에 살던 죽자竹子 고년을 만나 잘 익은 수박이라도 하나 쩍 소리 나게 쪼개서 쟁반에 안다미로 담아 놓고 빨간 속살을 뭉텅뭉텅 물어뜯었던가 쩍 벌어진 그녀의 입속은 빨갛다 단단한 흑요석 이빨이 반짝이고 있다 수박 속에는 바다가 들어 있다 세계 지도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불쑥! 하면 쑥불!이 될 수밖에야 쑥불 피워 놓고 모기를 쫓으면서 한밤에 수박잔치라도 벌이자..

<시> 허리가 중심이다

허리가 중심이다 洪 海 里 허리야, 허리야, 아이고 허리야 네 위에 머리가 있고 아래에 다리가 있다, 허리야 해리가 왜 허리야 허리야 하고 부르는가 나를 곧추 세우는 것은 무엇인가 「물의 뼈」라는 시를 쓰고 나서 허리 수술을 받았다 "물이 무리하는 법은 없다 내 몸에 물이 가득 차야 너에게 웃음을 주고 영원으로 가는 길을 뚫는다" 했는데 내 몸의 물이 무리했던가 '허리가 중심이다!' 주장하는 병원이었다 그러고 나서 두 해가 흘렀다 내 허리를 세워 주는 것은 무엇인가 요추 3, 4번 사이 인공관절을 집어넣고 보형물 세 개를 삽입했다 쇠로 허리를 세우고 나를 일으켰으니 그것이 나의 중심인가 술은 한 모금도 안 된다 한 세월이 한참이었다 이제는 몇 모금씩 술맛을 보며 사니 나를 세워 주는 것이 '술의 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