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1월, 낙엽 11월, 낙엽 洪 海 里 울며불며 매달리지 마라 의초롭던 잎의 한때는 꿈이었느니 때가 되면 저마다 제 갈 길로 가는 법 애걸하고 복걸해도 소용없는 일 차라리 작별인사를 눈으로 하면 하늘에는 기러기 떼로떼로 날고 있다 한겨울에 꼿꼿이 서 있기 위해, 나무는 봄부터 푸르도록 길어올리..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비밀 비밀 洪 海 里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문제다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그녀의 입은 가볍고 싸다무겁고 비싼 네 입도 별수없지만혼자 알고 있기엔 아깝다고입이 근지럽다고허투루 발설 마라말끝에 말이 난다네 말 한 마리가 만의 말을 끌고 날아간다말이란 다산성이라 새끼를 많이 낳는다그 여자 귀엔 천 마리 파발마가 달리고 있다말은 발이 없어 빨리 달린다, 아니, 난다그러니 남의 말은 함부로덤부로 타지 마라말발굽에 밟히면 그냥 가는 수가 있다그 여자 귓속에는 세상의 귀가 다 들어 있다 그 여자 귀는 천 개의 나발이다그녀는 늘 나발을 불며 날아다닌다한번, 그녀의 귀에 들어가 보라새끼 낳은 늙은 암퇘지 걸근거리듯그녀는 비밀肥蜜을 먹고 비밀秘密을 까는 촉새다'이건 너와 나만 아는 비밀이다'. - 시..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억새 날다 억새 날다 洪 海 里 웃는 걸까 우는 걸까 웃음이 울음 속으로 들어가고 울음이 웃음 밖으로 나오니 이승인지 저승인지 모를 일, 바람 따라 온몸을 흔들면서 때로는 허리 꺾어 몸을 뉘고 산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친다 그 소리에 문뜩 산이 지워진다 굽이치는 것은 은빛 강물 소린가 천파만..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황금 여인 황금 여인黃金女人 洪 海 里 금값이 날마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更新하고 있다 이제는 황금을 경신敬信, 아니 경신敬神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 황금 여인을 모시기로 했다 여신 계약을 하고 여신女神으로 모시면 나의 신을 위해서면 무슨 거짓말을 못 하랴 도둑질이나 살인인들 하지 ..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분수 분수噴水 洪 海 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지만 물은 스스로 분수를 알아 적당한 높이에서 몸을 낮추고 한 송이 꽃을 피우면서 지고 마는 절정의 순간 햇살이 잠시 쉬었다 가고 바람도 옷자락을 흔들어 주고 흰구름이 가만히 손을 얹는다 금빛 꿈이란 늘 허망한 법 촉촉이 젖어 있는 너..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야생野生 야생野生 洪 海 里 이리저리 어슬렁어슬렁 흔들리노니, 구름에 몸 맡기고 물처럼 흘러가다 꽃 속에 뒹굴든가 꽃잎 물고 죽든가 홀로 가도 들판에 바람은 불어오고 달빛은 내 그림자 가지고 놀고 있네. 싸늘한 바람소리 옷깃을 여미면 새들은 풀어헤치며 깔깔깔 웃고 있네 향 피워 하늘의 ..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꽃이 지고 나서야 꽃이 지고 나서야 洪 海 里 하루에도 열두 번씩 너를 보고 싶었다 마음만 마음만 하다 눈멀고 귀먹고 마음이란 것 참으로 아무것도 아니구나 꽃 지고 나서야 열매를 맺다니 꽃이 피면 뭣 하나 꽃 지면 뭘 해? - 시집『비밀』(2010, 우리글)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콩새야 콩새야 洪 海 里 콩새야 콩새야 느릅나무에 앉아만 있지 말고 콩밭에 가서 놀아라 겨울이 오기 전에 작두콩이나 한 알 물어 오너라 칼이나 하나 차고 오너라. - 시집『비밀』(2010, 우리글)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구두끈 구두끈 洪 海 里 저녁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구두끈이 풀어져 거치적거리는 것도 모르고 허위허위 걸어왔다 나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가 묶어야 할 것은 묶고 매야 할 것은 단단히 매야 하는데 풀어진 구두끈처럼 몸이 풀어져 허우적거린다 풀어진다는 것은 매이고 묶인 것이 풀리는 것이.. 시집『비밀』2010 2010.02.07
<시> 퇴고 퇴고推敲 洪 海 里 자궁에 품고 있을 때나 세상에 드러내고 나서나 또는 시집 속에 위리안치해도, 양수에 둥둥 떠다니고 있는 영원한 미숙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詩 아닌 詩, 문을 밀거나 또는 두드리거나, 진화 중 또는 퇴화 중인, 나의 詩는 퇴고 중. - 시집『비밀』(2010, 우리글) 시집『비밀』2010 2010.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