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소리꽃 소리꽃 洪 海 里 땅이 포근히 품을 펼치자 푸나무들 다투어 몰래 몸을 열어 온갖 색깔로 노래하는 것을 보고 하늘에서 새들도 소리로 꽃을 피워 몸이 젖어 색색거리고 있다 꽃을 피우는 것은 영원을 이어가는 일이어서 찰나의 꿈이 하늘과 땅에 천년의 사랑으로 꽂힌다 드디어 하늘과 땅..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1.04.22
<시> 어머니들 어머니들 洪 海 里 金가네 울타리에는 목 잘린 해바라기 대궁 하나 서 있고, 李가네 밭에는 옥수수 이파리 바람에 부석거리고, 朴가네 산에는 알밤 털린 밤송이만 굴러다니고, 崔가네 논두렁에는 빈 꼬투리만 콩대에 매달려 있고, 洪가네 담에는 호박넝쿨 가을볕에 바싹 말라 있고, 池가..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0.11.12
<시> 청산은 나를 보고 청산은 나를 보고 - 나옹懶翁선사 흉내내기 洪 海 里 부모님 나를 보고 바르게 살라 하고 자식들 나를 보고 꿋꿋이 살라 하네 출세도 벗어 놓고 권세도 벗어 놓고 산처럼 바다처럼 살다가 가라 하네. 아내는 나를 보고 다정히 살라 하고 친구들 나를 보고 신의로 살라 하네 독선도 벗어 놓..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0.11.05
<시> 무현금無絃琴 무현금無絃琴 洪 海 里 한여름 우이도원牛耳桃源 푸른 숲 속 어디선가 거문고 우는 소리 가야금 타는 소리 도도동 도도동 도도동동 동동동 동동동 동동동동 백년 살다 백골사리로 빛나는 오동나무 한 그루 까막딱다구리가 속을 다 비워낸 텅 빈 성자의 맨몸을 쇠딱다구리 수백 마리 꽁지를 까닥이며 쬐그만 부리로 사리를 쪼고 있다 줄 없는 거문고 가야금 거문고가 따로없다 온몸으로 우는 오동이 한 줄의 거대한 현絃이다. * 지난 유월 초하루(음) 임보 시인과 牛耳桃源에 올랐다. 막걸리 둬 병 꿰차고 우이도원에 당도하자 어디선가 가야금, 거문고 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선녀라도 하강하여 환영연주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가만히 보니 그 소리는 선 채로 죽어 있는 하얀 백골 오동나무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0.07.14
<시> 현장 검증 현장 검증 洪 海 里 매화나무 가까스로 꽃을 피우자 숲 속의 수다쟁이 떠덜새인 직박구리 떼로떼로 몰려와 집을 비운 사이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말도 못하는 어린 것들 꽃 속에 뾰족한 부리를 박고 쪽쪽쪽 쪼아대자 옆의 애들도 겁에 질려 입술이 파랗게 얼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혼..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0.04.21
<시> 봄바람 속에 봄바람 속에 洪 海 里 겨울바람 속에는 날카로운 솜방망이가 들어 있다 두억시니 어처구니 칼 찬 사내들 말발굽소리 대지를 가르지만 미나리꽝 얼음장 밑 푸른 미나리 살 오르는 소리 들어 보아라 봄바람 속에는 부드러운 칼이 들어 있으니 눈이 빠지게 기다리던 너 눈에 빠지며 엎어지..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0.03.27
<시> 새대가리들 새대가리들 洪 海 里 새 까먹은 소리를 하지 않는 새는 귀엽다 새는 앉는 데마다 깃이 떨어진다 새도 가지를 가려서 앉는다는데 새 발의 피만도 못하게 날뛰는 것들 새것 헌것도 구별 못하는 새대가리들 새그물이나 쳐 잡아다 구어먹자고 새근발딱대는 내 꼴은 또 어떤가 소가 먹은 것을 ..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0.02.23
<시> 설매雪梅 설매雪梅 洪 海 里 밖에는 눈이 내려 쌓이고, 방안에선 매화가 벙글었다 핀다 언제적 눈맞춤이 꽃으로 맺고 또 언제적 입맞춤이 이리 향을 피우는가 언뜻, 밖에 눈이 멎고 천지가 고요하다 드디어 꽃봉오리 터지고 있다 필 듯 필 듯하던 꽃이파리 하늘 가득 날리면 금방 청매실 부풀어 처녀들 가슴도 ..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0.01.22
<시> 몸을 바치다 몸을 바치다 洪 海 里 몸을 바친다 몸을 준다는 게 무엇인가 사는 것이 몸을 파는 일 몸을 사는 일이니 어미는 자식에게 몸을 주고 아비는 한평생 몸을 바친다 어제는 밥에게 몸을 팔고 오늘은 병에게 몸을 준다 그는 돈에 몸을 사고 너는 권력에 몸을 바친다 술집거리에서 웃음을 팔고 몸..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09.05.18
개나리꽃 개나리꽃 洪 海 里 개나리 마을에 가면 지하 깊숙한 암흑 속 구리빛 사내들 금 캐는 소리. 지상의 따스한 한때 눈빛 고운 처녀애들 손끝에서 터져나오는 금빛 웃음소리.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09.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