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피다 호박꽃 피다 洪 海 里 새벽부터 꾀꼬리가 울어 쌓더니 뜰에 심은 호박이 꽃을 피웠다 그제 한 송이 어제 또 하나 노란 수꽃만 피다 드디어 오늘 암꽃이 피었다 아침 일찍 누가 기별을 했는지 호박벌 한 마리 벌써 꽃 속에 들어가 꺽정이처럼 당당하게 놀고 있다 수꽃이 먼저 피어 기다리는..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6.06.07
흖다 흖다 洪 海 里 돌을 찾아 강으로 가든 난을 캐러 산으로 가든, 멋진 돌을 만나는 사람은 앞서 가는 발 빠른 이가 아니고, 귀한 난을 찾는 이는 맨 뒤에 가는 느린 발걸음이다. 앞에 간다고 뽑낼 것도 없고 뒤에 간다고 서운할 것 없다.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6.06.04
5월 5월 洪 海 里 나 오월 비 갠 날 참나무 숲 꾀꼬리 소리 혼자 듣기 아까워 허공에 차린 주안상 노랗게 날리는 송홧가루 검은등뻐꾸기 네 박자 노래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혼자 노네.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6.05.05
풍경 풍경 洪 海 里 얼굴이 맷돌처럼 얽은 사내 모처럼 기어든 작부집 하룻밤 허기를 채우고 난 다음날 복사꽃 핀 흐뭇한 얼굴로, 해가 중천에 오른 시각 호기롭게 여자를 끌고 들어간 음식점 계집이 시킨 것은 갈비탕 보통 사내가 주문한 것은 곰탕 보통, 종업원 주방을 향해 "여기 갈보 하나, ..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6.01.07
<동시> 강아지풀 강아지풀 洪 海 里 강아지야 강아지야 꼬리나 살랑살랑 흔들어 보아라 뒷목이 간질간질 손목도 간질간질 간지럽다 간지럽다 요놈의 강아지야! - 월간《우리詩》(2015. 4월호).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5.04.08
<동시> 유쾌한 저녁 유쾌한 저녁 洪 海 里 귀뚜라미 떼로 모여 귀를 뚫는다 밤새도록 귀뚤귀뚤 풀잎 음악회 둥근 달도 웃으면서 내려다보고 소슬바람 지나가며 손을 흔든다. 엄마 아빠 언니 오빠 귀를 뚫는다 밤새도록 귀뚤귀뚤 꽃잎 음악회 별님들도 눈 맞추며 귀를 모으고 시냇물도 흘러가며 입을 가린다. -..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5.02.21
<시> 시안詩眼 시안詩眼 洪 海 里 한 권의 시집을 세우는 것은 시집 속 수십 편의 시가 아니라 한 편의 빼어난 시다. 한 편의 시를 살리는 것은, 바로, 반짝이는 시의 눈이다. 스스로 빛나는 시의 눈빛! 그 눈을 씻기 위해 시인은 새벽마다 한 대접의 정화수를 긷는다. - 월간《우리詩》(2013. 11월호) <감..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3.09.17
<시> 입하立夏 입하立夏 洪 海 里 새소리에서도 물빛 향기가 난다 연두 초록으로 날아오르는 산야 숲은 이미 감탄사로 다 젖은 밀림 무한 천공으로 가득 차는 저 광채! **************** 새벽을 적신 비가 고맙다. 때에 맞게 내려온 햇볕이 반가워. 무심코 지나치던 것이 새롭게 다가오는 날은. 초록 숲에 앉았던 바람이 보리밭을 출렁인다. 어떤 향기가 날까. 물에 기댄 실버들 흔들흔들 몸을 말린다. 간밤 연두와 초록을 건너던 꿈이 뻐꾸기 울음 물들었을까. 절기를 몸에 넣어주는 것은 하늘의 일이지만, 이 향기와 색깔을 쓰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내게 들어온 한 절기를 느낌표로 찍어 훗날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 금강. =========================================== * 2008...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3.05.06
<시> 독서법 독서법 洪 海 里 눈이 침침해 책을 오래 볼 수가 없다 눈을 감으면 드디어 천 개의 눈이 열리고 귀가 만리 밖까지 트인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던 책이 눈앞에 펼쳐진다 손으로 책장을 넘길 필요가 없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책 아무리 오래 읽어도 눈이 아프지 않다 나이 들어 시력이 떨어..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3.03.22
<시>북한산 노래 북한산 노래 洪 海 里 새색시처럼 단장하고 있는 진달래능선으로 새들이 솔바람을 타고 내려오며 전해 주는 말씀이, 백운봉은 '서로 용서하라' 하고 인수봉은 '서로 화해하라' 하니 만경봉은 '서로 사랑하라' 이른다네. 북한산이 너른 품을 활짝 여는 저녁이면 골짜기 따라 아래로 아래로 .. 시집『정곡론正鵠論』(2020) 2013.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