牛耳洞 이야기

우이령 보존회 10년사

洪 海 里 2005. 11. 19. 08:08

우이령보존회 10년사

최중기(회장)

북한산 국립공원내 우이령 도로 확포장 저지 활동
 ***우이령보존협의회 결성***
  일명 소귀고개로 알려진 우이령 길은 6.25 이전에는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와
서울의 우이동 일대를 연결하는 소로로 있었으나 6.25중 미국 공병대가 작전도로로 
개설하여 차량통행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군 작전 도로로 개설하긴 하였으나 
1968년 1.21사태 이전까지는 민간인의 출입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1969년 군부대와 전투 경찰대가 주둔하면서 민간인의 출입이 전면금지 되어 왔다. 
민간인의 출입이 가능하던 1969년 이전에는 우이령 길에서 인접한 오봉을 등반하기 
위하여 산악인들은 이 길을 많이 이용하였고 도로에 인접하여 야영을 하기도 하였었다.
우이령 길은 북한산 국립공원의 남쪽 삼각산과 북쪽 도봉산을 이어주는 연결부이나 
1983년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뒤에도 군사상의 이유로 양주군 쪽에는 군부대가, 
서울시 쪽에는 전투 경찰대가 주둔하여 우이동 그린파크 앞에서 1.5킬로미터 까지만
민간인의 출입이 허용되어 왔다. 이 일대는 1969년 이후 군과 경찰이 주둔하여 막사를
짓고, 훈련장을 건설하여 흉하게 훼손된 곳도 있는 반면에 20년 이상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된 까닭에 일부 지역은 생태적으로 북한산 국립공원 내에서 가장 잘 보존 되어 있다.
1994년 초 당시 서울시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군은 환경영향평가나 교통영향평가도
받지 않은 채 총 59억원의 예산을 들여 그해 6월부터 우이동의 그린파크 앞에서부터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 음자 마을까지 6.8킬로미터에 달하는 6미터 폭의 우이령 흙길을
폭 8-12미터의 왕복 2차선 도로로 확 포장하는 공사를 이미 확정한 상태였다.
북한산 국립공원 내 우이령 길 확 포장 계획에 대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도로 교통전문가, 
국립공원 생태 전문가, 환경단체, 자연 애호가들은 반대의사를  표시하여 왔고,
1993년 6월 4일 도봉구 방학동의 8백년 생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21회 세계 환경의 날 
기념 심포지움으로 ‘자연의 최후 보루 국립공원만은 살려야 한다.’는 표제를 내걸고 
우이령 확 포장 도로 개설 반대 입장을 표명하였다. 이 심포지움에서 도시 교통 연구소
박용훈 소장은 우이령 길과 연결되는 송추 지역의 39번국도와 우이동 지역의 우이동 길,
도봉로, 삼양로 등은 이미 평일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휴일에도 교통량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어 도로 개설에 따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또한 서울시의 
계획대로 많은 차량이 이 도로를 이용할 경우 교통소통이 원활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송추, 장흥일대의 유원지에 극심한 주차 문제까지 유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응용생태 연구회 회장인 이경재 서울 시립대 교수는 북한산 우이령 고개 관통도로 
계획의 문제점은 78.5평방킬로미터의 좁은 북한산 국립공원이 이분화되면 삼각산 
지역은 45평방킬로미터, 도봉산 지역은 33평방킬로미터로 생태계 단위면적이 협소화 
되어 생물종 멸종이 가속화 될 것이라고 했다. 즉 북한산 북쪽에 극소수 서식하는 
산토끼, 다람쥐, 뱀, 개구리 등 동물의 이동로가 차단되어 근친교배가 이루어지면
열성형질이 나타나 불임률, 기형률, 사망률 등이 출생률보다 높아져 결국 동물은 
멸종될 확률이 많으며 이는 식물이나 미생물에도 영향을 끼쳐 결국 생태계가 황폐화 
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도로 개통 후 우이령에 이용객이 증가하면 계곡과 삼림으로 무분별한 출입이 
이루어져 공사 중에 나온 돌과 자갈로 메꾸어진 계곡과 산림 내 생태계 의 파괴가 
가속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당시 환경처 또한 우이령의 특성상 도로를 넓힐 경우 경사면을 많이 깎아야 하기 
때문에 많은 양의 토양유실이 발생하고 이로 인한 북한산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내무부, 서울시, 경기도 등 관계부처에 공사계획을 재고해 줄 것을 
요청하였었다. 
  그러나 서울시와 경기도는 우이령 도로 확 포장 공사는 교통영향평가나 환경여향평가
의 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양주군 주민과 도봉구 주민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서
는 도로 확 포장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펴고 1993년 말에 설계를 마치고 1994년 초에 
건설 예산까지 확보한 상태였다.
  우이령 길 확 포장과 관련하여 서울시의 요청을 받은 환경처는 소귀고개부근의
500미터 터널공사, 도로상 휴게소 설치 금지 등 5개항의 조건을 내세웠고, 군부대와 
전투 경찰대는 상부의 지시에 의해 도로 확 포장을 동의 해준 상태였다.
1993년 11월경 산악 보존에 관한 현안 문제를 논의하기로 하여 모인 정연규 한국산악회
자연보호 이사, 김태섭 한국산악회 자연보호 위원장, 이장오 산악보존 활동가, 
필자(당시 대한산악연맹 자연보호 이사) 네 사람은 우이령에 관통도로가 생긴다는데 
우려를 표명하고 우이령 길 확 포장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여 몇 차례 
만나면서 구체적인 방안을 의논 했다. 우이령 길 확 포장 공사를 막기 위해서는 어느 
일개 단체가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보고, 그동안 우이령 길 확, 포장에 반대 의사
를 표명해온 단체와 개인들을 1994년 년초에 모두 만나 보기로 하여 이장오 씨에게 
연락을 부탁하였다. 
  1994년 1월 10일 대한산악연맹 회의실에는 대한산악연맹의 최중기 자연보호 이사, 
한국산악회 정연규 자연보호 이사, 김태섭 자연보호 위원장, 서울시 산악 연맹의 
정원수 총무이사, 자연 환경 운동가 이장오씨, 코리아 헤럴드의 조상희 차장, 
수문출판사 이수용 사장, 문우서림의 김영복씨, 사람과 산지의 현진오 기자 등 
산악 보존에 관심 많은 인사들과 환경 정책 연구소의 신창현 소장, 환경운동연합, 
배달환경연구소 등의 간사들이 참석하여 우이령 확장 포장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였다.
우이령 확포장에 대하여 이장오씨는 “우이령 포장은 지난 선거 때 양주지역에 출마한 
임사빈 의원의 공약사업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6공화국 때 이미 관련 부처간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소개 했다. 
  북한산 살리기 운동에 관심을 가져온 조상희씨는 “경기도에서 주민 숙원 사업을 
운운하며 도로를 내자는 데에 서울시가 끌려가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울시가 공사를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산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온 김영복씨는 “서울의 안산인 남산은 복원운동을 펴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여 산자락의 외인 아파트까지 철거하면서, 안산보다 더 중요한 
진산인 북한산에는 중장비를 동원하여 길을 놓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며 
이의 중지를 촉구했다. 
  신창현 소장은 “그동안 통제해온 도로에 대한 통행금지 조치의 철회는 바람직한 
일이나 현행법상 환경영향평가 대상 사업인지에 대한 판단이 애매하므로 여론을 
환기시켜 환경영향 평가를 받도록 해야 하고, 이를 토대로 공정회 등을 개최하여 
각계의 입장을 들어야한다.”고 의견을 냈다. 
  최중기 이사는 “군부대에 의해 민간인의 출입이 금지되어온 도로가 문민시대를 맞아 
개방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국립공원 내 도로이기 때문에 도로의 확장 포장이 
아니라 등산객과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통행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금되어야 한다. 
자의든 타의든 자연에 대한 휴식이 실시되어온 이 지역은 자동차 출입은 금지하고 
자연탐방로로 개방되어 도보로만 출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현지오 기자는 “그동안 산악계는 우이령 포장 문제에 대해서 소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는 점에서 현재 일고 있는 산악계의 반대 움직임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북한산만큼 산악인들에게 관련이 깊은 산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산악인의 
모산이라해도 과언이 아닌 북한산 파괴 행위에 대해 산악인들이 좌시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 안 될 것이다.”라며 “1984년 북한산에 케이불카를 설치할 움직임이 있었을 때 
많은 산악인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저지한 과거의 관심과 열정을 다시 한번 보여줄 
시점이다.”고 산악계의 반대운동 참여를 호소하였다. 
이날 모인 사람들은 우이령 확장포장을 저지하기로 하고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펴나가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1월 14일 2차 모임을 갖으면서 북한산 우이령 확포장에 반대하는 각계의 
대표들이 참여하는 우이령 보존 협의회를 빠른 시일 내에 창립하기로 하고 실무 
준비 모임을 매주 갖기로 하였다. 
  이들은 우이령 보존 협의회 창립을 위하여 우선 우이령 보존 협의회 발기를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3월 3일 오후 7시 역삼동의 산악문화 회관에서 발기인 대회를 
갖고 창립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발기인 대회에 참가한 40여명의 발기인들은 우이령 보존을 위한 발의문을 채택하고 
‘우이령은 보존상의 목적을 제외하고는 시민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우이령의 기존도로는 시민들의 자연 탐방보도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이령 도로 포장은 환경 영향 평가와 공개된 
전문가들의 논증과 공청회를 통한 여론 수렴 수 종합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등 
3개항의 요구사항을 천명했다. 
  창립 준비 위원회(공동 위원장 최중기, 정연규)는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하여 
3월중으로 우이령 보존 협의회를 창립하기로 하여 3월 19일 오후 3시 프레스 센터 
19층 기자 회견장에서 창립총회 및 기념 강연회를 개최하였다. 
  창립총회에는 우이령 보존 협의회의 창립 취지에 뜻을 같이 하는 240여명의 산악인과 
자연보호 운동 관계자들이 참석해 공동 대표 및 자문 위원을 추대하고 사업 계획을 
심의, 확정하는 등 본격적인 우이령 길 확포장 반대 운동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날 (사)자연보존 협회의 우한정 사무총장, 사립 중․고등학교 교장회 엄규백회장, 
서울시 산악 연맹의 김인식 회장, 한국 대학산악연맹의 이인정 회장, 한마음 운동본의 
본부장인 오태순 신부가 공동 대표로 추대되었다. 자문위원으로는 원병오 자연보호 
협회회장, 권효섭 한국등산학교장, 김영도 한국등산연구 소장, 소설가 김성동,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 노융희 배달 환경 연구소 소장, 손경석 한국산서회 회장, 박철암 한국 
히말라얀 클럽 회장, 유인태 의원, 이재돈 청년환경학교 교장, 차동광 도선사주지를 
추대하기로 하였다. 
  공동 대표 아래 운영을 담당할 운영위원회와 실무를 담당할 사무국을 두기로 하여 
사무국장에 이장오씨, 운영위원에 권태섭 도봉구 구의원, 김영복, 김태섭, 박용훈 
도시교통 연구소 소장, 박웅준 환경운동 연합 간사, 오병훈 한국자생 식물연구회 
이사,  이규태 대학산악 연맹 부회장, 이수용, 이은복 한국자연보존협회 학술위원, 
이병천 박사, 정원수, 정연규, 정영성, 조상희, 현진오, 홍철부 씨 등이 선임되었고,
운영위원장에 최중기 대한 산악 연맹이사가 선임 되었다. 
  이날 총회에서 “4월 중 홍보 신문 발행과 우이령 보존 걷기 대회, 5월 이후 환경 영향
평가 추진 및 공청회 개최” 등을 벌여나가기로 하였다. 총회에 이어 벌어진 기념 강연회
에서는 “자연보존의 원리와 도로 개설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조도순
성심여대 교수와 “우이령 관통도로의 교통측면에서의 고찰”이라는 주제로 도시교통 
연구소 박용훈 소장의 강연이 있었다. 
  조도순 교수는 자연 생태계를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에 이용되는 섬의 생물지리설과 
경관생태학 등 생태학적 원리를 설명하고 이에 따른 우이령 도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고립된 두 생태계를 이어주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토지를 매입하는 외국의 예를 
들어가며 우이령 도로 개설을 반박했다. 특히 서울시가 계획하고 있는 박스형 이동통로
는 들쥐, 다람쥐, 고양이 등 마을 근처에서 자라는 동물들의 이동 통로가 될 수 있으나 
정작 보호가 필요한 야생 동물들의 이동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이는 정상부 500미터를 터널로 뚫어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용훈 소장은 ‘전국 어디에 도로를 뚫어도 경제성 없는 도로는 없다.’고 전제한 뒤 
시간 절감이나 에너지 절약이나 하는 항목들은 도로개설에 따른 경제성 분석에 있어서 
이익으로 포함시키는 반면에 비용부문에는 건설비와 용지비, 보상비를 제외한 
환경파괴나 생활권의 단절 등은 비용으로 고려하지 않는 것은 객관성이 결여된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생태계의 파괴가 수반되는 경우에는 교통 수요가 아무리 
크더라도 도로를 건설하지 않는 선진국의 도로 정책을 본받을 때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국립공원 내에 도로를 개설 할 때 교통 영향 평가나 환경 영향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연에 이어 북한산 국립공원에서 자라는 식물 슬라이드 상연이 있었다. 
상연된 100여장의 슬라이드는 한국 자생 식물 연구회 오병훈 운영위원이 5년간 북한산 
일대에서 촬영한 것 중 일부로 이중에는 1990년대 초에 북한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학계에 알려진 후 그동안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산개나리를 비롯하여 끈끈이 주걱, 
은방울 꽃, 용담, 구상난 풀, 동의나물, 참배암즈기, 물매화, 백선, 광대수염 등 희귀 
또는 특이한 식물들이 여럿 포함되어 있어 우이령 도로 주변에서도 식물 조사가 
정밀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총회이후 운영위원회는 사무국의 업무 추진을 위하여 사무실을 우이령에 가까운 곳에
두기로 하여 이수용 위원의 소개로 쌍문동에 독지가의 사무실을 임시로 지원 받아 
반대운동을 준비해 나갔다. 
  운영위원회는 우선 반대 운동을 홍보하기 위하여 조상희 위원이 중심이 되어 우이령 
보존 신문을 4월 중으로 발간하고, 반대 운동에는 시민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보고 
우이령 길을 하루 개방하여 시민들이 우이령 길을 직접 걸어보고 보존 운동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 4월17일에 우이령 걷기 대회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4월 10일 우이령 보존 신문 발행을 위해서 코리아 타임스의 조상희 차장이 발벗고 나서
권태섭 의원의 사무실 등에서 운영위원들과 철야 작업을 하여 타블로이드 판 8면의 
신문을  만들어 냈다. 
  한편 홍보를 위하여 팜플렛을 만들어 지하철 등에서 서울 시민을 상대로 우이령 도로의 
부당성을 알리고, 4월 17일 우이령 도로 걷기대회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우이령 걷기 대회 행사를 위하여 우선 우이령 일대에 주둔하고 있는 전투 경찰대와 
군부대와 접촉한 결과 이들 또한 우이령 확포장이 이루어질 경우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할 처지라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사가 있음을 보였다. 이들의 상급 기관 또한 이 행사에
대하여 호의를 보여 우이령 걷기 대회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이령 걷기 대회는 예정대로 4월 17일 열렸다. 
  68년 1․21 사태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곧식 개방된 이날 행사에는 시민 7천여명이
참가해 잘 보존된 우이령 지역의 자연 생태와 경관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우이동 그린파크 앞 교통광장에 모인 걷기 대회 참가자들은 
‘우이령 포장되면 도봉, 북한산 끊어진다.’, ‘국립공원 도로내도 환경영향 필요 없는 
현행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2천만의 허파, 이곳만은 지키자.’, ‘서울 정도 600년에 
진산 파괴 웬말이냐.’, ‘바위고개 우이령, 러브호텔 길목된다.’ 등의 구호가 씌어진 
피켓을 앞세우고 우이령 넘어 유격장까지 걸으며 우이령 확포장 계획의 무모함을 지적
하며 우이령 보존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열의가 어느 정도인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날 출발 지점인 그린 파크 앞에서 행해진 개회식에는 우한정 공동대표의 개회사, 
권태섭 위원의 경과보고, 김인식 공동대표의 취지문 낭독이 있었다. 전투 경찰대는 
여러 군데 급수대를 갖추고 우이령 골짜기의 시원한 물을 제공하여 시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날 마지막 행사는 우이령 고개 넘어 북쪽으로 보이는 다섯 개의 암봉 오봉 아래 공터
에 모여 오봉을 향해 제단을 차리고 북한산 신에게 제를 올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산제를 올린 후 북한산 연구가인 김영복 선생의 우이령에 얽힌 역사소개, 북한산을 
사랑하는 어머니들 노래와 연세대 음대 4중창단의 환경 노래 등으로 이어지고 
‘바위고개’노래를 합창하였다. 
  시동인 모임인 ‘우이동시인들’의 홍해리 시인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
란 시낭송을 한 뒤 시민여론 광장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 참가 시민이 ‘런던, 파리, 워싱턴, 도쿄 등 세계 어느 나라의 수도도
지척에 북한산만한 자연 경관지를 둔 곳이 없다.’면서 ‘이런 하늘이 주신 축복을 
소수의 사람들의 교통 편의를 위해 훼손하려는 당국의 처사를 이해 할 수 없다.’고 
하자 참가자들은 모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날 많은 참가자들은 우이령 도로 
확포장의 부당성을 성토하고 도로 확포장을 저지할 것을 결의하고 끝을 맺었다. 
우이령 걷기 대회 행사를 통하여 서울 시민들의 우이령 보존에 대한 열의가 대단함을 
느끼게 하였다. 
  우이령 걷기 대회 행사 연락처의 하나였던 한국 대학산악연맹 사무실에는 며칠전부터 
참가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으며, 행사 당일에 그린 파크 앞 광장에는 2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 관심을 보였다. 
  이날 행사에 대해 도하 각 신문이 자세히 보도하였고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은 
‘우이령 도로 확포장이 이루어질 경우 이 정권이 무사하지 못할 것’ 이란 엄포를 쏟았고,
이규태 코너에서는 우이령이 역사적, 지리적 의미에 대하여 자세히 논하고 보존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우이령 걷기 대회 행사 이후 김인식 공동대표를 비롯한 운영위원들은 서울시 교통 
건설국장을 면담하여 우이령 도로 확포장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중지하여 줄 것을 
요구하였고, 우이령 걷기대회를 통하여 민의를 읽은 당국자도 이를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약속하였다. 
  우이령 걷기 대회 행사 며칠 후에는 이원종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이 우이령 일대를 
돌아보기도 하였다. 당시 이회창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해당 부처에 우이령 도로 
확포장을 신중하게 검토할 것을 지시하였다. 
운영위원회는 이후 도로 개설 환경 영향 평가를 요구하며, 우이령 도로 주변의 역사적
가치를 조사하며, 전문가들과 접촉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9월20일 경 열린 국립공원 
위원회에서 우이령 도로 확포장 계획은 만장일치로 부결되고 우이령 도로 확포장은
백지로 돌아갔다. 
  그해 12월 우이령 보존 협의회는 정부가 예산까지 책정하였던 국책사업을 처음으로 
환경 문제를 이유로 중지시킨 사례로 환경부 출입 환경기자단이 뽑은 ‘올해의 환경인’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우이령 도로 확포장 반대 운동을 통하여 우리는 국립공원 내 도로 개통은 국립공원 
지정 의미에도 반하는 사실임을 확인하였고, 많은 서울 시민들이 북한산 국립공원이
조금이라고 훼손되는 것을 원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산악인뿐만 아니라 많은 서울 
시민들이 북한산 국립공원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제는 우이령 도로가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많이 줄어든 만큼, 전투 경찰대와 군부대는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북한산 국립공원관리 공단은 우이령 도로를 생태 도로로 조성
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인용문헌
사람과 산, 1993년 6월호, 우이령 도로 포장은 재고되어야 한다(글 민병준)
사람과 산, 1994년 2월호, 우이령 포장 반대 위해 산악계가 일어섰다(글 현진오)
사람과 산, 1994년 4월호, 북한산 보호 위해 우이령 보존협 결성했다(글 현진오)
사람과 산, 1994년 5월호, 우이령 시민 걷기 대회 열렸다(글 현진오)
산, 1994년 5월호, 우이령 보존 시민 걷기 대회 현장 중계(글 안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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