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 20

자연법

자연법 洪 海 里 몸 소리치는 대로 마음 대답하고 마음 부르는 대로 몸 응대하니 춤추고 노래하라 기뻐하고 슬퍼하라 마음 가는 대로 몸 따라가고 몸 이끄는 대로 마음 뒤따르니 나무를 보라 새를 보라 구름 없는 청산 얼마나 외로운가 마음 떠난 몸 어디로 가나 몸 잃은 마음 어디서 떠도나 몸과 마음, 마음과 몸 응달진 마음자리 쏟아지는 가을볕 아닌가. - 월간 《우리詩》 2023. 1월호.

연꽃바다 암자 한 채

* 천세련(재미화가) 연꽃바다 암자 한 채 洪 海 里 1. 꽃은 핀 적도 진 적도 없다 은은한 향기 먼 기억으로 번질 뿐 꽃은 피지도 지지도 않는다. 2. 가벼운 목숨이 스치고 지나가는 암자의 하늘 조금은 쓸쓸한 물빛이 감돌아 동자승 눈썹 위에 연꽃이 피고 바람이 이슬방울 굴리고 있다. 3. 풍경소리 또르르 또르르 울고 있다. - 출처 : 미디어조계사(http://news.jogyesa.kr)

명자꽃

꽃향시향 《춤》 2022. 10. 11. 명자꽃 박제영(시인, 월간 《太白》 편집장 명자꽃, 봄꽃 중에서 붉은 꽃을 고르라 하면 명자꽃이지요. 봄날 붉은 저것이 동백인가 싶기도 하고, 홍매화인가 싶기도 한데, 실은 명자꽃이지요. 흔하디 흔해서 ‘아무개’ 대신 써도 될 것 같은 이름, 명자. 명자꽃은 서럽게 붉지요. 오늘은 그 명자를 불러봅니다.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눈에 띈 기사가 있어서, 그 기사를 쓴 이가 또 친한 선배이기도 해서, 전문을 옮깁니다. 2016년 3월26일 토요일 자 「강원도민일보」에 실린 강병로 논설위원의 칼럼입니다. 담장너머 명자나무에서 봄을 찾다 문득 떠오른 시 한 편.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다. 시를 읊조릴수록 마음이 무겁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탓일 게다. ‘꽃이/ 피는 건..

선운사 배롱나무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洪 海 里 꽃나무 아래 서면 눈이 슬픈 사람아 이 봄날 마음 둔 것들 눈독들이다 눈멀면 꽃 지고 상처도 사라지는가 욕하지 마라, 산것들 물오른다고 죽을 줄 모르고 달려오는 저 바람 마음도 주기 전 날아가 버리고 마니 네게 주는 눈길 쌓이면 무덤 되리라 꽃은 피어 온 세상 기가 넘쳐나지만 허기진 가난이면 또 어떻겠느냐 윤이월 달 아래 벙그는 저 빈 자궁들 제발 죄 받을 일이라도 있어야겠다 취하지 않는 파도가 하늘에 닿아 아무래도 혼자서는 못 마시겠네 꽃나무 아래 서면 눈물나는 사랑아. - 시집 『봄, 벼락치다』(2006, 우리글)

낙조落照

낙조落照 洪 海 里 나근나근 나긋나긋하던 노을이 죽비竹篦가 되어 등짝을 후려치네 단조로움 속으로 서서히 침잠하던 나의 회색빛 삶 낫낫해 더덜없이 가는 길이었는데 밑천 없는 내일이 펼쳐져 있다니 가면서 가지는 게 삶인데 불방망이가 내려치니 바람이 길을 가르쳐주겠는가 구름이 그러겠는가 가지 못한 삶 가지도 않고 가지 못할 길 책등만 보고 한 권 다 읽었다는 듯 길 이름만 듣고 다 살아 보았는가 또다시 저녁놀이 시뻘건 죽비가 되어 어깻죽지를 내리치는 소리 고막을 찢네! * Yangwoo Kwon 님의 페북에서 옮김. "저문다는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