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 27

이태원공화국

이태원공화국 洪 海 里 그날 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경찰은 어디 가서 자고 있는지 공무원도 어느 곳을 산책 중이었는지 순진한 발자국만 골목마다 물밀듯이 모여들고 무정부시 해방구 해밀턴로 159엔 젊은 열정만 파도쳤다 풍랑 심한 밤바다 사공 한 사람 보이지 않고 거센 폭풍만 절벽을 때리고 있었다 일순 밀리고 떼밀리고 넘어지고 무너지고 나가넘어지고 쓰러지고 나뒤쳐지고 엎어지고 나둥그러지고 자빠지고 고꾸라지고 채이고 치이고 꺼꾸러지고 밟히고 넘어박히고 깔리고 나가떨어지고 눌리고 덮이고~~~ "사람이 죽고 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아무리 소리쳐도 들리지 않는 절망의 세상에서 미쳐 피어보지도 못하고 낙화, 낙화, 죄없는 슬픈 꽃들이 파괴되고 있었다 산다는 게 이런 것인가 아니다 사는 게 ..

어린아이 / 이령의 아침을 여는 시감상

[이령의 아침을 여는 시감상]ㅡ2019.12.9. 어린아이 ㅡ 치매행致梅行ㆍ4 홍 해 리 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치면 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 내게 매달려 한 마디 말은 없지만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 시집: 『치매행 致梅行』 중/ -아내에게 바치는 안타까운 사랑 고백 ~~~~~~~~~~~~~~~~~~~~~~~~ * 시감상: 이 령(시인) 순애보인 동시에 참회록이다ㆍ 시집 『치매행致梅行』..

물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바람처럼 洪 海 里 꿈속에서 꿈같은 시절 누렸다고 부디 수수꾸지 말아 다오 발이 없어도 못 가는 곳 없는 바람처럼 낮은 곳만 찾아 서슴없이 가는 물같이 오늘도 불어가고 내일도 흘러서 갈 척행隻行의 길! 너는 네 혀로 말하고 나는 내 귀로 듣는 네 말 다 지우고 내 말 다 사라진 곳으로 나 가리라 나가리라 무하유지향으로! * 퇴고 중인 초고임.

층꽃풀탑

층꽃풀탑 洪 海 里 탑을 쌓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도 간절하면 몸을 흔들어 한 층 한 층 탑사塔寺를 짓는다. 층꽃나무를 보라, 온몸으로 꽃을 피워 올리는 저 눈물겨운 전신공양. 해마다 쌓고 또 허물면서 제자리에서 천년이 간다. 나비가 날아와 몸으로 한 층 쌓고 벌이 와서 또 한 층 얹는다. 스님은 어디 가셨는지 달빛 선정禪定에 든 적멸의 탑, 말씀도 없고 문자도 없는 무자천서無字天書 경전 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