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詩는 없다』(미간) 259

칼집 속의 한 여자

칼집 속 여자 洪 海 里 한 여자가 나의 칼집 속에 살고 있다 그녀는 늘 불과 물 사이를 오가고 있다 무념無念으로 불을 끄고 물을 뜨고 있다 그녀가 노는 곳은 내 무상無常의 꿈속이고 꿈 밖이다 그녀는 무력武力으로 나를 무력無力하게 한다 젖은 머릿속과 마른 가슴속에서 꿈적꿈적 꿈의 적的/敵을 도려내고 있다 피 한 방울 내비치지 않는다 그녀는 말랑말랑한 양날의 칼이다 저만치 서 있는 그녀는 어떤 독을 품고 있는가 어떤 지옥을 가슴속에 안고 있는가 파리지옥인가 개미지옥인가 흘러내리면서 다 태워버리는 용암인가 *** 퇴고 중인 초고임

겨울 산에서

겨울 산에서 洪 海 里 죽은 듯 서 있어도 눈 빤히 뜨고 동안거에 든 침묵의 나무들 속 깊은 영혼이 얼마나 맑고 아름다운가 겨울 산이 춥지 않은 것은 나무들이 산을 꼭 껴안고 있기 때문이다 몸 가득 채우고 있던 무거운 마음 직박구리가 한입씩 물고 마을로 내려간다 새벽마다 하루를 절벽으로 맞는 것은 아직도 네가 덜 아프고 덜 슬퍼서이니 외로우면 참지 말고 눈물 속에 빠져 보거라 맨몸으로 시가 된 나무들의 도저한 정신을 산에 올라 귀 대고 가만히 들어 보거라 한눈팔지 말고 똑바로 가라 하지 않느냐 네 갈 길이 아직 땅땅하다 텅 빈 계곡의 바람소리에 봄은 이미 연둣빛 싹을 부풀리고 있다. * 겨울산 : http://blog.daum.net/jib17에서 옮김.

자짓빛 상상

자짓빛 상상 洪 海 里 그녀는 가지를 보면 자지 생각이 난다 그러나 그녀 차지는 되지 않는다 약삭빠르고 헤픈 것들이 워낙 많아서 뒷전에서 침이나 삼키다 파지가 되고 만다 하지夏至면 축 늘어진 채 당당한 한때 잘생긴 가지 자줏빛으로 반짝이는 가지 갖고 싶다 따고 싶다 안고 싶다 먹고 싶다 하고 싶다 꼭지를 딸까 배꼽부터 씹을까 가운델 뭉텅 베어물까. 그녀는 마지막으로 막막해지고 싶다 적막강산이 되고 싶다 젖가슴 풀어헤치고 다리속곳 벗어던지고 가시고기처럼 알을 슬고 바위 하나 품고 싶은 가지가지 생각에 가지나무에 목을 맬 수도 없는 그녀는 자짓빛 상상이나 하고 있다. - 월간《우리詩》(2012. 3월호)

<시> 우이동솔밭공원 한마悍馬

우이동솔밭공원 한마悍馬   洪 海 里 우이동 솔밭공원 백년 된 천 그루 솔숲에 고삐도 없는 한마 한 마리 배를 채웠는지 느릿느릿 거닐고 있다 광야에서 외롭게 풀을 뜯고 있던 향수가 바람결에 실려와 평생 비워내던 육신이 이슬에 젖고 있다 한때만 그랬으랴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바람마저 소리만 울리다 가게 했던 공간 그 어디 심지 올릴 한 곳 남아 있어 이렇게 불씨 일고 있는가 자르고 또 잘라 살만 남은 몸으로 초라한 행색의 한 나그네 지나다가 말 옆에서 걸음을 멈춘다 둘 다 아직 맑고 영롱한 눈빛 서로가 비어 있어 가득했던 몸너나 나나 마찬가지였다고 한마 한 마리 나그네를 등에 업고 우이동솔밭공원 거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