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능동과 수동 능동과 수동 8 홍해리(洪海里) 바닷가 백사장에 모래성을 쌓으면 파도가 밀려와 무심히 지워 버리고 지우면 다시 쌓다 잠을 설치다 어둔 밤 칠흑의 뜰에 등을 밝히면 바람이 불어와 슬그머니 꺼버리고 꺼지면 다시 밝히다 잠을 설치다 푸른 풀밭 너른 벌판 너를 잡으면 너는 달아나고 달아나고 다시 잡..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능동과 수동 능동과 수동 홍해리(洪海里) 소라나팔을 불면 너는 현악기, 온몸으로 울었다 바람소리만 스쳐도 밑둥까지 흔들리는 나무 낮은 산등성이에 올라도 벌써 산맥이 춤을 춘다 오, 흔들리는 산하 요동하는 대지여 죽어 있던 화산이 살아 온 세상이 불바다가 된다 타오르는 불꽃 녹아내리는 순수 적막한 강산..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1986 봄 1986 봄 홍해리(洪海里) 영등포 로터리 김안과 병원 접수권 번호 4846 보이지 않는 눈을 감고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 세상이 막막하다 간호원에 이끌려 의사 앞에 앉는 나는 수인 죄없는 수인이 된다 세상은 밝고 초롱초롱한 눈동자기 거리에 가득한데 눈을 가린 나는 갈곳없는 외로운 섬 등대불 꺼진 바..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능동과 수동 능동과 수동 6 홍해리(洪海里)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흐르면 거대한 다리를 감고 돌아 흘러서 얼마쯤 가면 우리 금으로 빛나랴 흘러온 것이 물소리뿐인가, 아아 빈 몸을 흔들며 가는 안개의 시간 뒤돌아보지도 않고 내처 흘러가 바다에 이르면 또 어디로 가나 아침 햇살에 놀라 몸을 떨면서 간밤의 짓..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서동요 서동요薯童謠 홍해리(洪海里) 1 천의 아이들 입마다 불을 밝혀서 서라벌 고샅마다 밤을 밝히던 사랑 앞엔 국경도 총칼도 없어 오로지 타오르는 불꽃 있을 뿐 사랑도 그적이면 꽃이였어라. 2 사랑 앞에선 황금도 돌무더기 신라 천년 사랑 천년 그 언저리 노랫소리 들려요 들려요 그대 옆구..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절망을 위하여 절망을 위하여 홍해리(洪海里) 만우절로 4월은 와서 수줍은 빛깔로 개나리 진달래는 터지는데 독개스가 눈물로 내리는 안개의 거리 대학가 돌팔매가 겨누는 곳은 어디인지 심장인지 허공인지 오늘도 독개스가 눈처럼 뿌려지고 돌멩이가 즐비한 거리를 택시로 지나다 아픈 눈으로 하늘을 본다 명안과..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병원길에서 병원길에서 홍해리(洪海里) 큰길에서 정문을 지나 병동으로 올라가는 우회로 벗꽃이 만개해 있다 학생들은 시험에 정신이 없고 시험이 끝나면 꽃은 다 지고 만다 한다 벗을 것 다 벗었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는 꽃들이 텅 빈 나의 눈에 가득 찬다 꽃은 당당한 神의 섹스다.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술나라 술나라 홍해리(洪海里) 法이 있어도 없는 나라 道가 있어도 없는 나라 時間이 있어도 없는 나라 타임머신의 나라 여자들의 끝없는 암흑의 나라 줄 넘은 유성기판의 나라 그때그사람그때그사람그때그사람그때그사 잠 속의 절망의 나라 여우의 나라 늑대의 나라 돼지의 나라 안개였다가 비였다가 바람..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서울 서낭당 서울 서낭당 홍해리(洪海里) 불면증에 허덕이는 도시 도심이나 변두리 이별을 밥먹 듯하는 영동이나 양동 창신동이나 청량리 오색찬란한 네온의 띠를 두른 서낭당이 하늘 높이 솟아 오른다 살아 있는 여인들의 시체 위로 던져지는 돌멩이 돌멩이 수없이 밀려가는 사람들 서낭에 가 절만 하는 강남과 ..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
<시> 주현미 주현미 홍해리(洪海里) 한탄강으로 가는 직행버스 초가을 맑은 날 카셋테입은 돌고 돌아 죽어 있던 관능이 터져 나왔다 전신으로 비늘을 반짝이며 사내들의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간드러지게 간드러지게 간지럼을 먹이면서, 퍼들퍼들 몸을 비비꼬며 꼬리를 쳤다, 타닥 탁! 어릴 적 개울의 송사리 떼 .. 시집『대추꽃 초록빛』1987 200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