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노을 노을 洪 海 里 보내고 난 비인 자리 그냥 수직으로 떨어지는 심장 한 편 투명한 유리잔 거기 그대로 비치는 첫이슬 빨갛게 익은 능금나무 밭 잔잔한 저녁 강물 하늘에는 누가 술을 빚는지 가득히 고이는 담백한 액체 아아, 보내고 나서 혼자서 드는 한 잔의 술. - 시집『花史記』(1975, 시문..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달래강에 가서 달래강에 가서 洪 海 里 하늘엔 부끄러움 하나 없는 갈기 무성한 말 떼 달려가는 말굽소리 문득 시린 과일의 심장 뚜욱, 떨어지고 있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중량. 지구는 온몸으로 다가오는 향그런 잡초 비늘로 강을 밝히는 은피래미 떼 눈 감고 귀 막아도 트이는 가슴. 바람은 투명한 살로..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중복中伏 중복中伏 洪 海 里 한낮 들녘 파아란 하늘 미루나무 이파리 환상의 구름장을 몰아다 등줄기에 쏟는 소나기 쏴아하아, 매미 소리여.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날씨] 22일 중복에 장맛비와 소나기 떨어집니다 2017.07.21 | 민중의소리 "미루나무 이파리/ 환상의 구름장을 몰아다/ 등줄기..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소리 · 2 소리 · 2 洪 海 里 하늘에서 누가 피리를 불고 있다. 죽은 나뭇가지에 와서 아픔이 되는 바람의 자유. 풀밭에 달려가 물구나물 서는 맨살의 도시, 그 언어들. 풀잎아 너의 꿈은 어디 있느냐 사랑이여 부를 수 없는 노래여. 살아나라 살아나라 하며 날아가는 저 하늘의 구름 한 점. 자갈밭에..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소리 1 소리 · 1 洪 海 里 백목련이 피었다 언제 지는지 살 떨어지는 소리로 가슴을 때리고 있다. 지지 않을 듯 지지 않을 듯 이마에 서늘히 하얀 불 켜고 순한 살로 의연히 미소짓더니, 다 타고 나서 재조차 남기지 않을 듯 천지간을 화안히 밝히더니만, 아무 나무 새순이나 꽃잎쯤이야 감히 치..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청주 청주淸州 洪 海 里 빈 가슴을 채울 것 하나 없어도 무심천 물빛이나 참나무 숲에 어리는 결 고운 바람으로 가슴은 늘 충만하다. 비어도 비어 더 채울 것 없고 차도 비어서 더 채울 것 없는 비인 산 가득 내리는 별빛 그리고 가을 저녁의 달. 모래밭의 모래알로 바람 속의 바람으로 묻혀 있..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연대기年代記 연대기年代記 洪 海 里 봄, 그 금빛 사태 아침은 강물소리로 열려 햇살은 금빛, 사태져 흐르고 죽음을 털고 일어서 열기를 더하는 가느란 생명, 짙은 호흡 겨우내 달아오르던 거대한 수목들의 뿌리며 몇 알 구근의 견고한 의지 단단한 밤의 안개를 털며 아픈 파도로 솟았다 청청한 구름을 ..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하지夏至 하지夏至 洪 海 里 낮이 길어질수록 바다에서 왔던 햇빛들이 하나씩 돌아가고 있다 골목길마다 끌려가는 사내들의 꽁무니에 뼈없는 일상이 흔들리고, 살로 걸어가는 사내들 플라타너스 그늘에서 마른 이야기를 건네는 젖은 바람의 손을 잡고 있다. 드디어 바닷속에 죽어 있던 여자들이 살아나와 물구나물 서고 있다. 가장 굵고 튼튼한 그림자를 던지는 가장 길고 건강한 사랑도 허허허! 하며 먼지를 털고 있다. 헛된 비만 때아니게 싸움에 지쳐 돌아가는 뜨거운 강의 등줄기를 내려치고 있다. - 시집 『花史記』(1975, 시문학사)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화사기 화사기花史記 하나 처음 내 가슴의 꽃밭은 열 여덟 살 시골처녀 그 환한 무명의 빛 살 비비는 비둘기 떼 미지의 아득한 꿈 흔들리는 순수의 密香 뿌연 새벽의 불빛 즐거운 아침의 연가 혼자서 피아프게 뒤채이던 늪 아침까지 출렁이며 울부짖는 꽃의 바람, 드디어의 開門. 둘 꽃밭의 꽃은 항상 은밀한 ..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29
<시> 거울 거울 洪 海 里 어둠이 짙을수록 더욱 똑똑히 보이는 내 영혼의 뼈와 살의 무늬들 전신이 맑아오는 칠흑의 세계 어디서 새벽녘 두레박 소리 들리고 어둠이 물러가는 그림자 보인다.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