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등나무 아래 서면 등나무 아래 서면 홍해리(洪海里) 밤에 잠깨어 등나무 아래 서면 흐느끼듯 흔들리는 보랏빛 등불이 여름밤을 밝히고, 하얀 여인들이 일어나 한밤중 잠 못 드는 피를 삭히며 옷을 벗고 또 벗는다 깨물어도 바숴지지 않을 혓바닥에서 부는 바람 살 밖으로 튀어나는 모래알을 한 알씩 한 알..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1
<시> 가랑잎 가랑잎 홍해리(洪海里) 홀로, 홀로, 하며 마른 혓바닥을 굴리면서 뼈다귀를 갉아먹는 소리가 난다. 한여름 풍성ㅎ던 온갖 욕망을 다아 털어버린 허허한 웃음소리 들린다. 자아, 자! 하며 서두는 영혼의 산자락엔 쓸쓸한 노을만 타오르고, 하늘ㅅ가 카알카알 바람은 차고 저녁별 떠오르는 ..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1
<詩> 해마다 이맘때면 해마다 이맘때면 홍해리(洪海里) 꽃밭에 와 놀던 햇빛들이 빈 꽃밭의 허공에서 더욱 맑은 머릿결을 빗질하고 있다. 머릿결마다 맑은 바람으로 한 해를 계산하지만 잠드는 산천의 하늘에는 허무의 허깨비만 날아다닌다. 아무도 손잡지 못하는 이 흔들리는 지구의 시간과 작별을 하고 있다..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1
<시> 자귀나무송 자귀나무송 홍해리(洪海里) 저녁 나절 몽롱히 취한 여자가 연분홍 실타래를 풀었다 말았다 동양을 꿈 속에 잠그고 있다. 등에 물을 끼얹으며 씻을 데 다 씻고 나서 한 사내의 넋을 불러내고 있다. 손마디 마디 녹아내린 밤 바람 어둠 속에서 달덩일 안고 죽어가듯이 풀과 하늘과 벌레를 수..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1
<시> 나의 식욕 나의 식욕 홍해리(洪海里) 입술 언저리에 와서는 말도 얼어 붙어 비인 공간은 비어 있을 뿐이다. 대숲에 들어 나의 귀는 살아 대바람소리만 듣는다. 대숲 우으로 나는 까마귀 떼 까마귀 울음을 울고 있다. 엄동에도 얼지 않는 갈증의 바다 순식물성 안주와 쏘주, 여자를 앞에 놓고 출렁출..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1
<시> 봄 무사 봄 무사 홍해리(洪海里) 해 뜨기 전 한참을 한탕하고난 바람기가 암캐들을 펄펄 날게 하고 있다 아랫배에 뜨거운 날개가 돋혀 골목길을 컹컹컹 휩쓸고 있다. 밤드리 퍼마신 독주가 서서히 안개로 풀리는 새벽 눌변의 사내들이 바다에 지친 사내들처럼 늘름한 햇살에 젖어 봄바람을 도파..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1
<시> 발성연습 발성연습 홍해리(洪海里) 아무도 없는 들판에 허공이 한 마당 허옇게 누워 있고 어둠이 혼자서 허리를 꺾고 있다. 소리도 못 치는 허수아비가 달빛과 꽃과 바람을 데리고 양춤을 추고 있는 풍경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짙은 막막함 그 한가운데 슬픔과 한의 새가 가끔 입을 벌려 발..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1
<시> 해갈법 해갈법 洪 海 里 얼음이 다 된 사내들이 쓰러지고 쓰러지고 쓰러질 때마다 막막한 노래는 하늘에 땅에 남는다 바람은 질기고도 길다 무모한 싸움은 끝나지 않고 창밖엔 번득이는 무명의 눈이 와 있다. 나는 지금 나체다 빛나는 몸뚱어리 바알간 알몸 맘 달아 피가 달아 울리고 있다 풀잎..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1
<시> 장미 장미 洪 海 里 겨우내 갈증으로 앓던 영혼의 목을 축여주는 너의 입술 어둔 잠에서 깨어 어질머리 나도록 오르는 불길 하늘에 펼치는 유월의 카아핏. 뉘에 올리는 제등이기 이리 향은 짙어라 입 다물고 소리치는 그대여 햇살은 사태 금빛 쾌청 하늘문을 여는 소리 들리고 문득 사라지는 ..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
<시> 새 새 洪 海 里 내 가슴속 흘러가는 영원의 강에 그리움만 닦고 닦아 물고 가더니 은하수 강물처럼 흐르게 하고 그곳의 고운 정기 모두 모아다 내 가슴속 꽃밭에 씨앗 뿌려서 어둔 이승 밝혀 놓고 되날아 가네. - 시집『花史記』(1975, 시문학사)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