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채석장 채석장 홍해리(洪海里) 천년을 하루같이 자연이던 저 돌. 정소리마다 튀어나는 돌조각 하늘이 한 자락씩 무너져 내리고, 신록의 사이 햇살은 부서지고 돌 깨는 소리 찰랑하지만 우리 옆구리의 청비늘은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흰 구름장만 날리면서도 배 고프지 않던 저 현훈의 지..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법주사 뒤뜰 법주사 뒤뜰 홍해리(洪海里) 연두 빛 고요론 뜰에 누우면 수 천 수목 손가락 사일 흐르는 바람 내 어깨를 흔들고 있다 봄볕에 흐르는 삼라만상 새울음, 부처님 말씀도 녹아버렸다. 춘삼월 간혹가다 피어나는 꽃 아름답기야 나비 날음새로 하늘을 열고 열 손가락 꼽아야 다 못하는 얘기지..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바람 한 점 바람 한 점 홍해리(洪海里) 입추가 지나면 송림 사잇길 은빛 고운 이슬이 내려 풀잎마다 지천으로 해가 돋는다. 열 길 맑은 살 속 한여름 불타오르던 온갖 욕망이 깊고 깊은 고독을 닦아 한가을 하늘 한복판 둥근 달을 띄우고, 하늘은 높이서 화장에 능하지만 인생은 가득한 공허 섭섭한 ..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거울 II 거울 ·Ⅱ 홍해리(洪海里) 가을은 그렇게 큰 거울을 하늘 높이 달아 놓고 나를 부른다. 언제 내 가슴에 그렇게 크고 맑은 거울이 비친 적이 있었던가 사랑도 시들해 새들은 머언 숲 속으로 날아가고 양지바른 무덤가에 풀잎도 금빛으로 타는 때면 그대 눈 속에선 물 흐르는 소리만 곱게 들..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눈을 쓸다 눈을 쓸다 홍해리(洪海里) 새벽에 일어나 눈을 쓸면 하늘이 쓸린다. 눈이 내린 아침 온갖 물상은 민주주의 지상엔 굴복한 모든 사물이 일어서고 순은으로 타는 햇살. 지난여름 타던 천둥과 번개도 어린 시절의 환상과 동경도 얼어 내렸다. 구름도 내려와 쌓였다 바람도 날아와 쌓였다. 밤..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사향 사향思鄕 홍해리(洪海里) 강읠 마치면 다섯시 10분 개나리 노오란 언덕을 내려 동선동 3가 191번지 골목엔 솜사탕을 물고 있는 집의 아이 또래들 흰 구름 하늘 둥둥 꽃잎 지는 저녁 종소리 홀로 서러워 창에 기대다 멀어지는 찻소리에 일찍 소등하고 자리에 들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개구리 ..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이명 이명耳鳴 洪 海 里 한밤 모든 사물이 죽어 어둠만이 충만할 때 나의 귀는 운다 통곡하며 운다. 누가 나의 혀를 잘라내고 있다 두 귀도 도려내고 눈도 휘벼내고 드디어 두개골을 박살내고 있다. 칼날이 번쩍인다 푸른 식칼이 토막토막 자르는 도마 위에 나의 전신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잔..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겨울바다 겨울바다 洪 海 里 갈치 비늘 풀어 한 말 하늘 가득 띄워 놓고 사납게 사납게 부서지는 바람 사해에서 칼을 물고 달려오고 있었다. 수천의 빛이 깨어져 그 빛의 바다마다 하늘이 흔들리고 하얀 이마를 부딪고 있는 파도 맨살로 엉겨 허덕이고 있었다 자잘한 물고기 떼 깊이 갈앉고 바닷개..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적막강산 적막강산 洪 海 里 모진 바람은 때없이 불어닥쳐 죄없는 풀잎만 스러진다. 죽은 듯이 엎드린 풀등을 타고 숱한 역사는 쌓이고 쌓인다. 웬일로 비는 그리 자주 내리는지 그 곱던 이슬도 먹혀 버리고 이젠 풀벌레도 울지 않는다 달빛에 절로 취해 울던 벌레여. 금간 가슴으로 서러움을 달래..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
<시> 달빛 달빛 洪 海 里 4월의 달은 배고파 운다 허리가 굽은 눈썹달의 등을 타고 돌아왔다 빌딩의 창문마다 쓸쓸한 달빛 창유리를 타고 흐른다 슬슬슬 등을 비비고 있는 달덩이 그 보드란 손목을 잡고 시가지를 벗어나면 풋풋한 땅기운이 솟아오른다 보리밭 밀밭의 부러진 팔다리 달빛은 하얀 뼈.. 시집『화사기花史記』1975 200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