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표 소주 '봄'표 소주 洪 海 里 봄이 오셨다 젖빛 옷을 입고 오셨다 온몸에서 젖비린내가 진동한다 젖물이 뚝뚝 듣는다 아기들은 지상에서 가장 맑은 물방울을 하나씩 머리에 이고 있다 부산스럽지만 고요하다 아직 탯줄도 자르지 않은 몸짓이 앙증맞다 밤새도록 자궁 출렁이는 소리 우주의 뜨거..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돌산 갓김치 돌산 갓김치 홍 해 리 눈 속을 뚫고 온 돌산 갓김치 입 안에 넣자 톡! 쏘는 맛이 상쾌하다 추위를 견디고 난 토라진 계집처럼 매콤하다 몇 번 씹으면 금세 코끝이 찡하고 금새 한 마리 눈물을 콕콕 쪼아낸다 바닷바람 탓인가 은장도 날빛 같은 달빛 배어 그런가 살짝 전 이파리와 줄기 속 ..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탐나는 탐라도 탐나는 탐라도 洪 海 里 탐라는 어머니의 섬 어린 새끼 젖 먹이려 가슴 풀어 헤친 어머니, 어머니의 섬 죽을둥살둥 빨아도 젖 한 방울 나지 않는데 입술 터지도록 빨아대던 새끼들 다 키워내고 이제는 넉넉한 품으로 누워 있는 탐라여 새끼들마다 바람과 파도를 죽어라 살아라 맞고 부딪치..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찬바람 불면 네가 그립다 찬바람 불면 네가 그립다 홍 해 리 늦가을 초겨울에 생각나는 사람 고작 짝사랑하던 여자냐 아직도 그 여자 네 가슴속 물바다에 차란차란 출렁이느냐 어둔 밤 일렁이는 호롱불 하나 네 가슴에 밝혀 놓고 그을음 없이 타는 불길 꺼지지 않아 홀로 밤을 밝히고 있느냐 배꼽 아래 집 한 채를 ..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밥 밥 홍 해 리 밥은 금방 지어 윤기 잘잘 흐를 때 푹푹 떠서 후후 불며 먹어야 밥맛 입맛 제대로 나는 법이지 전기밥솥으로 손쉽게 지어 며칠을 두고 먹는 지겨운 밥 색깔까지 변하고 맛도 떨어진 그건 밥이 아니다 밥이 아니야 네 귀 달린 무쇠솥에 햅쌀 씻어 안치고 오긋한 아구리에 소댕..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단칼을 기리며 단칼을 기리며 洪 海 里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돌아서지 마라 당장은 후련하겠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또 만나지 않겠느냐 해방은 없다 자유도 없다 목숨 있는 동안은 빗장을 걸지 마라 다 산 것처럼 하지 마라 내일도 해는 또 다시 떠오른다 절정에서 눈부시던 것들 소멸의 순간은 더욱 곱고..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영자를 위하여 영자를 위하여 홍 해 리 영자의 소리는 살아 있는데 얼굴이 없어 어릴 적 고향에서 '영자야, 들어와 밥 먹어라' 할 때나 '가마 타고 장가가기는 영 글렀네' 라 노래할 때 '영자'의 영자나 '영 글렀네'의 영자나 '영'자는 '영'자가 아니었다 ㅏ 다음에 ㅑ, ㅗ 다음에 ㅛ이듯 ㅡ 다음에는 =가 돼..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시> 흰 모란이 피었다기 흰 모란이 피었다기 洪 海 里 모란이 피었다는 운수재韻壽齋 주인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더니 금방 구름처럼 지고 말 마당가득흰구름꽃나무숲 저 영화를 어쩌나 함박만한 웃음을 달고 서 있는 저 여인 한세상이 다 네게 있구나 5월은 환하게 깊어가고 은빛으로 빛나는 저 소멸도 ..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곡우, 소쩍새 울다 곡우穀雨, 소쩍새 울다 洪 海 里 곡우哭憂, 뜬눈의 밤을 하얗게 밝혀 가슴속에 슬픔의 궁전 하나 짓는, 칠흑 날밤 피로 찍어 쌓아올린 탑 하릴없이 헐어내리는---, 소쩍새 울다. * 저저지난해 穀雨(4/20)에 처음으로 뒷산에서 소쩍새가 울었다. 새벽 세 시 소쩍새 울음소리에 잠이 깨다. 소쩍, 소옷쩍! 2005년에도 곡우는 4월 20일, 지난해도 곡우에 소쩍새가 울었다. - 시집『황금감옥』(2008, 우리글)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
참꽃여자 · 10 참꽃여자 · 10 - '한오백년'을 들으며 홍 해 리 봄에 왔다 봄에 간 너의 침묵으로 피어나는 연분홍 아우성 앞에 무릎 꺾고 애걸하다 젖고 마는 눈물 맑은 손수건 다 펼쳐 놓고 싸늘한 바람도 잠깐, 꽃불이 붉어 무엇하리 피고 지는 게 다 이루지 못하는 세상일 줄이야 너를 보는 건 영원한 .. 시집『황금감옥』2008 2008.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