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덕과 내 탓 네 덕과 내 탓 洪 海 里 풀잎도 칼이 되어 일어서다니 세상이 이렇게 된 게 다 나 때문인데 누굴 탓하랴 그나마 이 정도인 것이 다 네 덕인데 우리가 다시 만나면 쉬어갈 만한 곳에서 한세상 살자 네 덕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닌 네 탓도 아니고 내 덕도 아닌 나라 머물다 갈 만한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면 한세월 살다가 가자. 『권커니 잣거니』(미간) 2024.02.18
귀가 지쳤다 귀가 지쳤다 洪 海 里 들을 소리 안 들을 소리까지 대책없이 줄창 듣기만 했다 늘 문이 열려 있어 온갖 잡소리가 다 들어오니 그럴 만도 하지 대문을 걸어 잠글 수 없으니 칭찬 아첨 욕지거리 비난 보이스피싱까지 수시로 괴롭히니 귀가 지쳤다 하루 한시도 쉴 새 없이 한평생 열어 놓고 줄곧 당한 귀의 노동 이제 귀가 운다. -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권커니 잣거니』(미간) 2024.02.13
교언영색巧言令色 교언영색巧言令色 洪 海 里 눈이 어두워지고 귀가 절벽이 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다 생각하면 눈물겹지 않은 일 어디 있으랴 산이 가로막아도 강물은 흘러가지만 살아 있을 때 사랑하라 소리는 들리는데 의미가 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권커니 잣거니』(미간) 2024.02.10
설 설 洪 海 里 한 밤 자고 두 밤 자고 손을 꼽던 날, 때때옷 꼬까신에 밤이 새던 날, 알몸으로 텅 빈 한 해 맞이하던 날, 온몸으로 맞고 싶지 않은 설미雪眉의 날. * 어느새 눈썹이 허옇다. 어느 때부터인가 내겐 설이란 게 사라지고 없다. 그렇게 기다리던 설날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2024갑진년.01.01. 隱山. 『권커니 잣거니』(미간) 2024.02.10
보고 듣고[見觀聞聽] 보고 듣고[見觀聞聽] 洪 海 里 보지 않아도 꽃이 보이는 것은 내 안에 꽃이 피어 있어서이고 듣지 않아도 새소리가 들리는 것은 내 안에 새가 살기 때문이고 눈썹은 가장 가까이 있어도 보이지 않고 가장 멀리 있는 우주는 내 속에 있어 가깝기만 하구나. 『권커니 잣거니』(미간) 2024.02.02
귀가 운다 귀가 운다 洪 海 里 귀도 외로우면 속이 비어 울고 싶어지는가 귓속에 바람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는지 밤낮없이 소리춤을 추며 우니 가렵고 간지러워 소리는 들리는데 의미는 오지 않는다. - 월간 《우리詩》 2024. 4월호. 『권커니 잣거니』(미간) 2024.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