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404

낙조落照

낙조落照 洪 海 里  나근나근나긋나긋하던 노을이죽비竹篦가 되어등짝을 후려치네 단조로움 속으로 서서히 침잠하던 나의 회색빛 삶낫낫해 더덜없이 가는 길이었는데밑천 없는 내일이 펼쳐져 있다니 가면서 가지는 게 삶인데불방망이가 내려치니바람이 길을 가르쳐주겠는가구름이 그러겠는가 가지 못한 삶가지도 않고 가지 못할 길책등만 보고 한 권 다 읽었다는 듯길 이름만 듣고 다 살아 보았는가 또다시저녁놀이 시뻘건 죽비가 되어어깻죽지를 내리치는 소리 고막을 찢네!  * Yangwoo Kwon 님의 페북에서 옮김. "저문다는 것에 대하여"

적울積鬱

적울積鬱 洪 海 里 "시는 내 영혼의 멍에, 향기롭게 빛나는 미라"라고 꿈속에서 미친 듯이 소리치고 있었다 "미라야, 너를 사랑해!" 하고 말해도 멍에는 벗겨지지 않고 미라의 무덤도 펼쳐지지 않았다 미라는 행간에 잠들어 있었다 나는 행간을 건너뛰면서 미라를 깨웠다 잠에서 깨어난 미라를 마구 씹기 시작했다 조미료, 방부제가 너무 많이 들어간 듯했다 질겅질겅 씹다 입술도 깨물고 꼭꼭 씹다 혓바닥도 물어뜯었다 살맛 피맛이 이럴까 하며 제멋대로 씹었다 되는 대로 씹다 뱉을 일이 아니었다 곰곰 씹어 보니 제 살맛 피맛이 아니었다 미라 속에 씹히는 돌이 있었다 그것만 뱉어내면 되는 것이었지만 가려내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꼭두새벽 밖에 나와 하늘을 보면 꺼진 영혼의 별들이 졸음에 겨워 있었다 답답한 내 미라의 파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