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호박 호박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만나 천둥..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1.04.20
<시> 귀북은 줄창 우네 귀북은 줄창 우네 洪 海 里 세상의 가장 큰 북 내 몸속에 있네 온갖 소리북채가 시도 때도 없이 울려 대는 귀북이네 한밤이나 새벽녘 북이 절로 울 때면 나는 지상에 없는 세월을 홀로 가네 봄이면 꽃이 와서 북을 깨우고 불같은 빗소리가 북채가 되어 난타공연을 하는 여름날 내 몸은 가..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1.04.20
<시> 청별淸別 청별淸別 洪 海 里 창 밖에 동백꽃 빨갛게 피고 구진구진 젖고 있는 겨울비 꽃 속에서 젖은 여인이 걸어나오는 동짓달도 저무는 보길도 부둣가 오후 두 시에서 세 시 사이 차 한잔 시켜 놓고 바다를 본다 고산이 어부사시사를 낚던 바다 빗사이로 보이는 겨울바다 빗방울 하나에도 바다는 깨어지고 동..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1.04.17
<시> 참꽃여자 참꽃여자 洪 海 里 1 하늘까지 분홍물 질펀히 들여 놓는 닿으면 녹을 듯한 입술뿐인 그 女子. 2 두견새 울어 예면 피를 토해서 산등성이 불 지르고 타고 있는 그 女子. 섭섭히 끄을리는 저녁놀빛 목숨으로 거듭살이 신명나서 피고 지는 그 女子. 3 무더기지는 시름 입 가리고 돌아서서 속살로 몸살하며 ..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1.04.17
<시> 설마雪馬 설마雪馬 洪 海 里 눈처럼 흰 말 눈 속에 사는 말 눈 속을 달려가는 말 설마 그런 말이 있기나 하랴마는 눈처럼 흰 설마를 찾아 눈 속으로 나 홀로 헤맨다 한들 설마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 말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말 달려가는 요란한 소리만 들려올 뿐 한평생 허위허위 걸어온 길이라 해도 앞이 ..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0.10.17
<시> 비밀 비밀 洪 海 里 그 여자 귀에 들어가면 세상이 다 아는 건 시간문제다 조심하라 네 입을 조심하라 그녀의 입은 가볍고 싸다 무겁고 비싼 네 입도 별수없지만 혼자 알고 있기엔 아깝다고 입이 근지럽다고 허투루 발설 마라 말끝에 말이 난다 네 말 한 마리가 만의 말을 끌고 날아간다 말이란 다산성이라 ..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0.10.17
<시> 방짜징 방짜징 洪 海 里 죽도록 맞고 태어나 평생을 맞고 사는 삶이러니, 수천수만 번 두들겨 맞으면서 얼마나 많은 울음의 파문을 새기고 새겼던가 소리밥을 지어 파문에 담아 채로 사방에 날리면 천지가 깊고 은은한 소리를 품어 풀 나무 새 짐승들과 산과 들과 하늘과 사람들이 모두 가슴속에 울음통을 만..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0.10.17
<시> 시가 죽이지요 시가 죽이지요 洪 海 里 시가 정말 죽이네요 시가 죽인다구요 내 시가 죽이라니 영양가 높은 전복죽이란 말인가 시래기죽 아���면 피죽이란 말인가 무슨 죽이냐구 식은 죽 먹듯 읽어치울 만큼 하찮단 말인가 내 시가 뭘 죽인다는 말인가 닦달하지 마라 죽은 밍근한 불로 천천히 잘 저으면서 끓여야 ..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0.10.17
<시> 비백飛白 비백飛白 洪 海 里 그의 글씨를 보면 폭포가 쏟아진다 물소리가 푸르다 언제 터질지 모를 불발탄이 숨겨져 있다 한켠 텅 빈 공간 마음이 비워지고 바람소리 들린다 펑! 터지는 폭발소리에 멈칫 눈길이 멎자 하얀 눈길이 펼쳐진다 날아가던 새들도 행렬을 바꾸어 끼룩대면서 글씨 속에 묻히고 만다 길을..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0.10.17
<시> 황태의 꿈 황태의 꿈 洪 海 里 아가리를 꿰어 무지막지하게 매달린 채 외로운 꿈을 꾸는 명태다, 나는 눈을 맞고 얼어 밤을 지새우고 낮이면 칼바람에 몸을 말리며 상덕 하덕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 만선의 꿈 지나온 긴긴 세월의 바닷길 출렁이는 파도로 행복했었나니 부디 쫄태는 되지 말리라 피도 .. 詩選集『시인이여 詩人이여』2012 2010.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