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92

<시> 금강구두

금강구두 - 林步調 洪 海 里 부처님 오신 날 마당의 풀을 뽑으면서 불경은 읽지 않고 불경스럽게도 삼겹살이나 굽자 할까 했는데 들어와 보니 전화가 여러 차례 와 쌓여 있었다 삼겹살보다 낫다는 오리고기로 점심을 하며 막걸리 한잔에 시간을 되돌리다 보니 우이동으로 이사한 후의 추억 몇 장을 그댁 사모님께서 펼치신다 강우원진이는 여학교 때 제자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애교 많던 반장 소녀 그녀가 임보 시인의 장녀다 어느 날 퇴근하면서 신발장을 여니 찬바람이 일었다 녀석들이 장난을 친 것이었다 여기저기 뒤져 봐도 '날 찾아 봐라' 였다 어쩔 수 없이 슬리퍼를 끌고 돌아서는 꼴에 녀석들은 숨어서 낄낄대며 얼마나 신이 났을까 그게 선생을 좋아한다는 여학생들의 표현이었다 그러다 주동인 우원진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란다..

<시> 산책

산책洪 海 里 산책은 산 책이다돈을 주고 산 책이 아니라살아 있는 책이다발이 읽고눈으로 듣고귀로 봐도 책하지 않는 책책이라면 학을 떼는 사람도산책을 하며 산 책을 펼친다느릿느릿,사색으로 가는 깊은 길을 따라자연경自然經을 읽는다한 발 한 발.    - 시집『독종』(2012, 북인)  - 월간《우리詩》2012. 8월호 * 스크린도어 앞에서 이 시를 접할 때 나는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시는 시가 갖춰야 할 쾌락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을 모두 갖췄다. '산책'이라는 말에서 '돈을 주고 산 책',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산 책'을 떠올리며 교묘한 언어유희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쾌락적 기능을 수행한 것이다. 아울러 산책을 '자연경'이라는 경전을 읽는 행위로 승화시키며 살아가며 '산책'뿐만 아니라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