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독종毒種』2012 91

<시> 금강구두

금강구두 - 林步調 洪 海 里 부처님 오신 날 마당의 풀을 뽑으면서 불경은 읽지 않고 불경스럽게도 삼겹살이나 굽자 할까 했는데 들어와 보니 전화가 여러 차례 와 쌓여 있었다 삼겹살보다 낫다는 오리고기로 점심을 하며 막걸리 한잔에 시간을 되돌리다 보니 우이동으로 이사한 후의 추억 몇 장을 그댁 사모님께서 펼치신다 강우원진이는 여학교 때 제자다 예쁘고 공부 잘하고 애교 많던 반장 소녀 그녀가 임보 시인의 장녀다 어느 날 퇴근하면서 신발장을 여니 찬바람이 일었다 녀석들이 장난을 친 것이었다 여기저기 뒤져 봐도 '날 찾아 봐라' 였다 어쩔 수 없이 슬리퍼를 끌고 돌아서는 꼴에 녀석들은 숨어서 낄낄대며 얼마나 신이 났을까 그게 선생을 좋아한다는 여학생들의 표현이었다 그러다 주동인 우원진이 엄마에게 전화를 했더란다..

<시> 넉넉낙낙 - 知音

넉넉낙낙 - 知音 洪 海 里 물은 산그림자만 씻고는 산을 두고 가면서도 가지 못한다. 됐다, 가거라! 산은 하지 않은 기침소리로 말하지만, 만남이 곧 떠남이란 걸 가르치려고 산과 내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산에 들어 물을 바라보던 게으른 이 하나 있어 죽기 좋은 자리 정자를 짓고, 물소리에 마음 닦고 바람으로 귀를 채우며 자락정自樂亭이라 이름했다 한다. 고산유수高山流水 바로 이런 것 아닌가. - 시집『독종』(2012, 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