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소사 입구에서 전어를 굽다 내소사 입구에서 전어를 굽다 洪 海 里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가을에 내소사 입구 전어 굽는 냄새 왕소금 튀듯 하는데 한번 나간 며느리 소식은커녕 단풍 든 사내들만 흔들리고 있었네 동동주에 붉게 타 비틀대고 있었네. - 시집『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빈집 빈집 洪 海 里 집은 무너지기 위하여 서 있는가 집을 지키는 힘은 무엇인가 빈집은 왜 무너지는가 무너지는 집이 안타까워 거미들은 줄을 늘여 이리저리 엮고 귀뚜라미도 목을 놓아 노래 부르는 마당에는 개망초 멋대로 자라 들쥐까지 모여들어 둥지를 트는 찬바람 넘나들며 문을 여닫는..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갈대 갈대 洪 海 里 올 때 되면 올 데로 오고 갈 때 되면 갈 데로 가는 철새들이 오는 걸 미리 알고 무리 지은 갈대는 꽃을 피워 하늘을 향해 흔들고 있는 것이다 저 새들의 날개짓이 갈대를 따뜻하게 했으니 갈대는 스스로 몸을 꺾어 날개죽지에 부리를 묻고 밤을 지새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짧은 생각 짧은 생각 洪 海 里 그리움은 꼬리가 길어 늘 허기지고 목이 마르니 다 사릴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야! 실처럼 금처럼 실금실금 기우는 햇살 같이나 우리는 하릴없이 서성이며 가슴에 울컥울컥 불이나 토할 것이냐 우도 바닷가 갯쑥부쟁이 겨우내 바다를 울리는 연한 보랏빛이나 갑도 절..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독 독 洪 海 里 네 앞에 서면 나는 그냥 배가 부르다 애인아, 잿물 같은 고독은 어둘수록 화안하다 눈이 내린 날 나는 독 속에서 독이 올라 오지든 질그릇이든 서서 죽는 침묵의 집이 된다. (시집『봄, 벼락치다』2006)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순리 순리 洪 海 里 매듭은 풀리기 위해 묶여 있다 치마끈이든 저고리 고름이든 끊으려 하지 마라 자르지 마라 매듭은 풀리기 위해 묶여 있다. (시집『봄, 벼락치다』2006)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은자의 꿈 은자隱者의 꿈 洪 海 里 산 채로 서서 적멸에 든 고산대의 주목朱木 한 그루, 타협을 거부하는 시인이 거문고 줄 팽팽히 조여 놓고 하늘관棺을 이고 설한풍 속 추상으로 서 계시다. 현과 현 사이 바람처럼 들락이는 마른 울음 때로는 배경이 되고 깊은 풍경이 되기도 하면서, 듣는 이 보는 ..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무화과 무화과無花果 洪 海 里 애 배는 것 부끄러운 일 아닌데 그녀는 왜 꼭꼭 숨기고 있는지 대체 누가 그녀를 범했을까 애비도 모르는 저 이쁜 것들, 주렁주렁, 스스로 익어 벙글어지다니 은밀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오늘밤 슬그머니 문지방 넘어가 보면 어둠이 어둡지 않고 빛나고 있을까 ..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문상 문상問喪 洪 海 里 엊저녁 지상의 마법을 벗은 아름다운 영혼이 하나 지고 하늘에는 새로운 별이 이름표를 달았다 홀로 왔다 혼자 간다며 친구는 액자 속에서 웃고 있었다 그는 말이 없었으나 식장은 쓸쓸하게 시끄러웠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상의 불빛은 보석밭이었지만 하늘의 별들..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
폭설 2 폭설暴雪 2 洪 海 里 붓질 한 번으로 먼 山이 지워지고 허공을 가로 날던 까만 새까지 사라지자 일순 눈이 먼 화가의 세상 민주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 바라건대 비소, 청산의 독毒 같은 슬픔이 묻어나는, 일필휘지 외로움으로 그린 산수화 한 폭의 여백餘白이기를! (시집『봄, 벼락치다』.. 시집『봄, 벼락치다』2006 2006.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