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투망도投網圖』1969 37

<시> 아지랑이

아지랑이 洪 海 里 봄이 타서 날아다닐 때면 날아다니는 것이 너무 많아 머리에 와서도 걸리고 가슴에도 와 닿는다 가난한 집의 계집애들도 고속도로를 타고 도시로 날아가 꽁지 빠진 닭처럼 뒤뚱거리고 머리털도 눈썹도 바다 건너로 날아가다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 가로수도 산도 날아간다 상채기진 날개를 퍼덕이며 도시는 교외선을 타고 날아가 퍼런 보리밭 위에 뒤엉켜 펄펄펄 몸을 비비며 아지랑이로 탄다 망치 소리에 깨어지는 돌의 혁명도 그 검은 손도 어이없이 날아가다 우리네 두개골을 울린다 자유도 날아간다 나도 날아가 뒤엉켜 탄다 봄이 타서 날아다닐 때면 날아다니는 것마다 자유를 벗어나 모든 것이 날아가 탄다. -『投網圖』(1969)

<시> 무원 시인에게

무원茂原 시인에게 洪 海 里 비 오는 날이면 너는 한 그루 수목 투명한 그림자를 흔들고 지나는 한 가닥 바람 이지의 매미 떼를 품고 서 있는 물이 뚝뚝 듣는 들판의 미루나무 동편 하늘에 뻗어오른 무지개 맑은 살을 손가락으로 빗어 올리며 단 한 번의 외도를 정도로 휘정휘정 먼 산으로 걸어가는 순한 눈동자 가슴 깊숙한 심지에 물 가르며 퍼덕이는 금빛 은빛깔의 물고기 떼처럼 의지의 손바닥을 반짝반짝 햇볕에 재끼면서 서 있는 수목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청청한 만년 소년. -『投網圖』(1969)

<시> 울음

울음 洪 海 里 입춘은 대지를 갈라 놓고 푸른 하늘을 흔든다 모세혈관 속 겨우내 얼어붙었던 진주알 이제 수목마다 수액을 켜 올리고 뒷산의 접동새도 나래를 턴다 고향을 향해 떠나는 눈물도, 휘어진 눈썹에 걸려 있다 밤하늘 잠 깨어 두런대는 지귀 가슴에 선덕여왕 가는 손이 떨려온다 아아, 천년 석탑의 싸늘한 기운 이 봄 머언 마을 어귈 돌아 조용한 아침 눈을 비빈다 부신 부신 울음 그것은 영롱한 햇살에 비친 무지개 그 아픈 전개의 여력은 모든 것을 압도한다. - 시집『投網圖』(1969)

<시> 보살사 풍경

보살사菩薩寺 풍경 洪 海 里 산 사이 구름 사이 또 몇 구비 은은한 풍경소리 홀로 한가롭다 솔소리 냇물 줄기 따라오르면 연봉 골짜기 몇 간 절터에 솔바람 티끌도 날리지 않고 햇볕이 부셔서 가슴에 달다 죽음도 삶도 마냥 한가지 마음을 모아 흰 구름 보니 산은 봄 연초록 짙어가는데 꽃잎 한가히 봄볕에 조을고 새 울음 냇물소리 천암千巖을 흘러 천년 부처님 가슴 적신다. - 시집 『投網圖』(1969, 선명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