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강타령 한강타령 아아 이제는 눈도 멀었다 아아 이제는 귀도 먹었다 아아 이제는 코도 막혔다 아아 이제는 심장도 멎었다 아아 이제는 생식기도 무용지물 아아 이제는 온몸이 마비되었다 해를 품지도 못하는 희망 절망만 노래하는 비애의 강 죽음의 노래여 늙은 창녀가 되어 온갖 잡것들 모두 받기만 하고 자..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4
<시> 배꽃 배꽃 홍해리(洪海里) 1 바람에 베어지는 달빛의 심장 잡티 하나 없는 하얀 불꽃이네 호르르 호르르 찰싹이는 은하의 물결. 2 천사들이 살풀이를 추고 있다 춤 끝나고 돌아서서 눈물질 때 폭탄처럼 떨어지는 꽃이파리 그 자리마다 그늘이 파여 …… 3 고요가 겨냥하는 만남을 위하여 배꽃과..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4
<시> 나무에게 경배를 나무에게 경배를 홍해리(洪海里) 한 그루 나무로 서고 싶네 땅 속 깊이 뿌리 박고 푸른 하늘에 손을 흔드는 때가 되면 아낌없이 나뭇잎을 떨어뜨려 시린 발등을 덮어주고 겨우내 하얀 잠 속에 빠져 모두 잊어버리는 망각의 여유와 푸르른 녹음으로 지친 영혼을 쉬게 하는 연초록 고운 이파리 칼보다 강..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4
<시> 춤 춤 홍해리(洪海里) 나비의 꿈을 엮다 나비가 되는 일 노래를 엮다 노래가 되고 학을 흉내내다 학이 되는 일 사위 속에 멈추고 정지 중에 이어지는 찰나와 영원 솟구치고 가라앉는 흐름과 멎음 물소리 그러하고 바람소리 그러하고 불길이 모여 빛으로 흘러가는 지상의 이 순간 영원을 타고 앉아 손끝에 ..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4
<시> 몸꽃은 꽃무덤에서만 핀다 몸꽃은 꽃무덤에서만 핀다 홍해리(洪海里) 여학교에는 계절이 없다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봄이다, 꽃피는 봄 춘삼월 연분홍 진달래 어릿어릿 비린내 어질머리 주근깨 박박 4월 철쭉 백목련 심장 위에 떨어진 자목련 한 잎 수수꽃다리에서 흑장미까지 하얀부처대가리꽃에 똑 떨어진 진홍의 장미꽃잎 ..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4
<시> 영혼의 사리 영혼의 사리 홍해리(洪海里) 눈물이 얼마나 단단한 강철인가 아는 이는 죽음이 얼마나 편안한 꿈인가를 알 수 있으리 온 길을 되짚어 가는 일도 때로는 절벽 어둠의 길 평정의 봉긋한 봉분을 짓고 대지를 한 벌의 수의로 삼아 갈대들이 흔드는 발마소리 강을 건너 억새밭을 오르는 달도 이울어 밤이 오..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4
<시> 가얏고 가얏고 홍해리(洪海里) 오동나무 깊은 속에 봉황이 깃을 치고 물소리 바람소리 천년이 감기더니 피마저 말라버린 고운 넋으로 열두 줄 울어울어 하늘빛 투명코나.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4
<시> 비유는 칼이다 비유는 칼이다 홍해리(洪海里) 낭자 쪽진 머리 이쪽 저쪽 위쪽 아래쪽 쪽빛 하늘의 쪽배 쪽쪽쪽 붙어서 쪽소리만 난다 쪽다리 건너 쪽대문 안 쪽마루 반돈짜리 18금 가락지 구멍 산것들은 흘리고 흔들리면서 가슴에 불 지피고 타오르면서 유리쪽 종이쪽으로 찌르고 뚫고 자지러지고 삭아내리고 떨어지..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4
<시> 장미원에서 1 장미원에서 · 1 홍해리(洪海里) 이곳에는 장미꽃이 지천이었어 때없이 피던 장미들은 뿌리째 뽑히고 그 넋들이 가시를 달고 날아 올라서 인수봉 언저리나 백운대를 떠돌다 밤이면 그리운 마을의 길을 물어 이름만 남아 있는 장미원 고샅 꿈으로 깃을 치고 잠깐 눈을 붙이지 새벽이면 소..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3
<시> 찬란한 세상 찬란한 세상 홍해리(洪海里) 소리는 귓속에 집을 짓지만 귓속에 들어가 보면 소리는 하나도 없다 사랑은 사람소리 떡에는 떡메소리 엿장수는 가윗소리 파도는 물소리를 소유하지만 모두 다 비웠을 때 비로소 소리의 집은 소리로 차서 소라껍데기 같은 이 귀가 빛난다 비어 있는 여자들의 소리는 귀에..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