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운선암 근처에서 운선암雲仙庵 근처에서 洪 海 里 진눈깨비 논두렁 밭두렁길을 곤두박질 바람 속을 헤쳐 가는 거미줄 세상의 낭낭떠러지 꽃들은 손끝마다 목숨 사르고 목탁새 찍어 우는 꽝꽝어둠을 눈물 속에 암자 한 채 떠메고 섰는 만리 밖 홀로 가는 쓸쓸한 사내 눈발 젖은 어둠 속에 비틀거리네.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2
<시> 찬란한 비수 찬란한 비수 홍해리(洪海里) 그리움은 연분홍 명주실타래 사랑은 한낮의 먼먼 비단길 마음은 무심을 벗해 보지만 일상은 바람따라 떠도는 구름.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2
<시> 봄날에 산에 올라 봄날에 산에 올라 홍해리(洪海里) 오봉산 천길 절벽 석굴을 파고 눈 아래 고운 자태 다 품고 앉은 비승비속 중놈들 번드르한 이마빡 혓바닥만 날름날름 웃고 앉았네 벙벙한 뱃구레엔 똥만 가득차 먹물옷 겹쳐 입고 냄새 풍기네.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2
<시> 탁배기 타령 탁배기 타령 홍해리(洪海里) 텁텁한 탁배기 가득 따라서 한 동이 벌컥벌컥 들이켜면 뜬계집도 정이 들어 보쟁이는데 한오백년 가락으로 북이 우누나 가슴에 불이 붙어 온몸이 달아 모닥불로 타오르는 숯검정 사랑 꽹과리 장고 지잉지잉 징소리 한풀이 살풀이로 비잉빙 돌아서 상모도 열두 발로 어지..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2
<시> 해당화 해당화 洪 海 里 그해 여름 산사에서 만난 쬐끄마한 계집애 귓불까지 빠알갛게 물든 계집애 절집 해우소 지붕 아래로 해는 뉘엿 떨어지고 헐떡이는 곡두만 어른거렸지 저녁바람이 조용한 절마당을 쓸고 있을 때 발갛게 물든 풍경소리 파·르·르·파·르·르 흩어지고 있었지 진흙 세상 속으로 환속하고 있었지. - 시집『투명한 슬픔』(1996)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2
<시> 한 편의 詩 한 편의 詩 / 洪 海 里 하늘과 땅이 밤을 밝혀 감탕질치다 마침내 분출하는 감창과 같은 그 사람 가슴속에 촉촉히 스밀 떨리면서 깊이깊이 스미고야 말 빛나는 앙금을 남기면서 굳어질 저 가을날 소금밭 같은 내 사랑아 쪽빛으로 젖어 오는 그리운 날을 날줄과 씨줄로 올올이 엮어 하늘에 ..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2
<시> 푸른 추억 푸른 추억 홍해리(洪海里) 지게미에 사카린 풀어 마시고 청솔가지 사이로 보던 하늘빛 서러워라 하늘이 흔들리던 노오란 허기 노란 허기여 찔레꽃 하얀 그늘 아래 또아리 틀고 앉아 있는 뱀 통통히 살이 배던 삘기 새순 입술 퍼렇도록 입바심하던 50년대 유년 시절 애달픔이여 산에 올라 송기 씹던 푸..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1
<시> 시가 무엇이냐고? 詩가 무엇이냐고? 洪 海 里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 젊은이 그걸 내가 알면 이러고 있나 한 30년 끙끙대며 허우적여도 아직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 걸 詩가 무엇인지 내가 안다면 벌써 이 짓거리 집어치웠지 벌써 이 짓거리 집어치웠지. - 시집『투명한 슬픔』(1996, 작가정신)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1
<시> 가을 남도행 가을 南道行 홍해리(洪海里) 날 저물어 주막에 몸을 기대면 술잔에 가득 차는 노을빛 슬픔 한 폭 풍경마다 그윽한 墨香 담담히 흘러가는 江물소리여.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1
<시> 녹색 융단 타고 한잔! 녹색 융단 타고 한잔! 홍해리(洪海里) 할아버지 그을린 주름살 사이사이 시원스레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쑤욱쑥 솟아올라 몸 비비는 벼 포기들 떼개구리 놀고 있는 무논에 서서 잇사이로 털어내는 질박한 웃음소리 한여름 가마불에 타는 저 들녘 논두렁에 주저앉아 들이켜는 막걸리 녹색 융단 타고 나.. 시집『투명한 슬픔』1996 2005.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