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시집 1979~1981 69

<시> 원단기행

원단기행元旦紀行 洪 海 里 정월 초하룻날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서설이라 즐거워했다 싸락눈이 이미 새벽을 덮고 여전히 눈발이 날리는 고속도로 젖빛 산하를 남으로 가며 지난 한 해를 눈발 속에 날려보냈다 자주 찾지 못한 고향을 새해 첫날 처음으로 찾아가면서 침침한 어둠과 메마름의 도시를 뒤로 하고 윈도우 와이퍼는 삐그덕대며 눈을 밀어낸다 금연석에 앉아 끽연하는 대머리청년이나 옆자리의 보따리 많은 공단처녀의 가슴도 그리운 고향 생각에 뒤채이던 섣달그믐 뿌연 성에가 낀 창밖을 묵묵히 바라볼 뿐 눈발은 하염없이 고요한 아침을 뒤덮고 원색 슬레이트 지붕 위로 연기가 오른다 후회와 기대와 새로운 각오가 더욱 엉기는 차창의 성에를 손가락으로 지우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월처럼 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어딘가로 돌아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