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 정, 또는 사랑 무제無題 - 情, 또는 사랑 洪 海 里 물에 뜨기도 하고 갈앉기도 하다가 모가 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다가 직선이기도 하고 곡선이기도 하다가 불칼이기도 하고 돌멩이이기도 하다가 밀가루 반죽이다가 참나무숯이다가 맹물이다가 독주이기도 하다가 보이다가 안 보이다가 보이다가 안 .. 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2006.02.18
말 말 꽃이나 돌멩이도 하나의 약속에 지나지 않는다 도토리묵장수의 새벽 외침도 생선가게의 바닷비린내도 계약의 이행을 위한 희망일 뿐 네가 약속을 깨면 무의미의 물상,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흥건히 땅 위에 깔리고, 너와 내가 이루는 다변의 향연도 불립문자의 묵시 앞엔 한 장의 어둠 돌아누운 .. 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2006.02.18
詩를 쓴답시구 詩를 쓴답시구 병든 말 몇 마리 허술한 울타리 갇혀버린 하늘의 뿌리 흔들린다는 창밖의 소리 울음소리 보이지 않는 심장소리 들리지 않는 웃음소리 만져 봐야 코끼리 다리 들어 봐야 뚝배기 깨지는 소리 눈으로 봐야 호박허리 눈 감으면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동해바다 푸른 갈기 말발굽소리 버들.. 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2006.02.18
신금언론 新金言論 홍 해 리 쇠는 아무 때나 두드리면 되고 이제는 구르는 돌에도 이끼가 돋는다 겨울이면 장미꽃이 아름다이 피어나고 봄은 여름 앞서 오지 않으며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을 가리고 있다 오늘 할 일은 내일로 내일은 또 내일의 내일로 휘파람을 불며 술을 마시고 콩 심은 데 팥이 팥 .. 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2006.02.18
가을 바닷가에서 가을 바닷가에서 여름내 백사장에 빠져 있던 음모들이 하릴없이 바람에 슬리고 우우우 물러서는 바다를 따라 정관절제 수술을 한 사내들의 무리가 영원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꿈의 나라의 영광을 위하여 물 속에 잠긴 불빛의 뜨거움을 위하여 흔들리는 물결의 덧없음을 위하여 바닷바람 따라 밤바.. 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2006.02.18
우물을 파면서 우물을 파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 살면서 산 좋고 물 좋다는 우이동에 살면서 한밤중 졸졸거리는 물소리도 귀해서 가뭄에 물길 찾아 땅을 파면서 깊은 땅 바위 사일 뚫고 뚫으면서 빗방울 같은 땀방울에 젖고 젖으면서 덜덜대는 착암기 소리에 귀를 날리면서 서울 가면 얼굴이 하얘진다는 고향친.. 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2006.02.18
<시> 꽃과 아이들 꽃과 아이들 洪 海 里 빛이 하나 가고 그 뒤를 꽃이 피어 있다 바다가 되고 비 갠 하늘의 향기 아이들이 난초꽃 속을 엿보고 있다 이파리 사이 까아만 눈썹 해 질 때까지 다시 해 뜰 때가지. - (1979) 3인시집 1979~1981/『산상영음山上詠吟』(1979) 2006.01.10
<시> 일여一餘 一餘 착갈피 치는 번개 소리도 차고 솔숲 아래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눈을 비비다 끊어진 소쩍새 울음 비에 젖지 않는 난초잎의 초록빛 적막을 울던 새는 날아가고 그 자리 부질없이 떨어지는 빗방울. (1979) 3인시집 1979~1981/『산상영음山上詠吟』(1979) 2006.01.10
<시> 원단기행 원단기행元旦紀行 洪 海 里 정월 초하룻날 눈이 내리면 사람들은 서설이라 즐거워했다 싸락눈이 이미 새벽을 덮고 여전히 눈발이 날리는 고속도로 젖빛 산하를 남으로 가며 지난 한 해를 눈발 속에 날려보냈다 자주 찾지 못한 고향을 새해 첫날 처음으로 찾아가면서 침침한 어둠과 메마름의 도시를 뒤로 하고 윈도우 와이퍼는 삐그덕대며 눈을 밀어낸다 금연석에 앉아 끽연하는 대머리청년이나 옆자리의 보따리 많은 공단처녀의 가슴도 그리운 고향 생각에 뒤채이던 섣달그믐 뿌연 성에가 낀 창밖을 묵묵히 바라볼 뿐 눈발은 하염없이 고요한 아침을 뒤덮고 원색 슬레이트 지붕 위로 연기가 오른다 후회와 기대와 새로운 각오가 더욱 엉기는 차창의 성에를 손가락으로 지우면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월처럼 달리고 있었다 어차피 어딘가로 돌아가야.. 3인시집 1979~1981/『원단기행元旦記行』(1981) 200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