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꽃 자귀나무꽃 洪 海 里 1.세모시 물항라 치마 저고리꽃부채 펼쳐 들어 햇빛 가리고 단내 날 듯 단내 날 듯돌아가는 산모롱이 산그늘 뉘엿뉘엿 설운 저녁답살 비치는 속살 내음 세모시 물항라.- 시집『청별淸別』 (1989) 2.꽃 피고 새가 울면 그대 오실까기다린 십년 세월 천년이 가네베갯머리 묻어 둔 채물 바래는 푸른 가약저 멀리 불빛 따라 가는 마음아눈도 멀고 귀도 먹은 세모시 물항라.- 시집『투명한 슬픔』(1996)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16
설마雪馬 설마雪馬 洪 海 里 눈처럼 흰 말 눈 속에 사는 말 눈 속을 달려가는 말 설마 그런 말이 있기는 하랴마는 눈처럼 흰 설마를 찾아 눈 속으로 나 홀로 헤맨다 한들 설마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만 말은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말 달려가는 요란한 소리만 들려올 뿐 한평생 허위허위 걸어온 길이..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12
타작打作 타작打作 洪 海 里 엊저녁에는 밤새도록 깨를 털었다 깻단을 두드리지 않아도 깨가 투두둑투두둑 쏟아져 내렸다 흰깨 검은깨 볶지 않아도 고소한 냄새 방안에 진동했다 날이 희붐하게 새었을 때 머리맡에 놓인 멍석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시의 씨앗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런 날 밤이..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12
연대기年代記 연대기年代記 洪 海 里 봄, 그 금빛 사태 아침은 강물소리로 열려 햇살은 금빛, 사태져 흐르고 죽음을 털고 일어서 열기를 더하는 가느란 생명, 짙은 호흡 겨우내 달아오르던 거대한 수목들의 뿌리며 몇 알 구근의 견고한 의지 단단한 밤의 안개를 털며 아픈 파도로 솟았다 청청한 구름을 날리는 하늘, 은밀한 눈짓에서 언뜻 틔어오는 달뜬 사랑의 비밀. 고요 속에 벙그는 다디단 꿈 온 세상은 불밝아 아지랑이로 타오르며 건강하게 웃고 있었다. 여름, 그 찬란한 허무 죽음을 앓던 고통도 허무도 뜨거운 태양 앞에선 한 치의 안개일 뿐. 또 하나의 허탈과 어둠을 예비하고 폭군처럼 몰고 가는 자연의 행진. 가을의 풍요론 황금 하늘을 위해 영혼의 불은 끝없이 타오르고 폭염으로 타는 집념의 숲 무성한 잎들의 요란한 군무소리, ..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12
웃음의 둥근 힘 웃음의 둥근 힘 洪 海 里 웃음은 둥글다 살아 있는 원이다 둥근 파문으로 눈이 동그래지면서 얼굴마다 쌍무지개 뜬다 코가 벌죽벌죽 실룩거리다 입이 소리로 웃어 꽃을 피우고 귀가 시늉을 하고 있다 배꼽을 쥐고 웃다 보면 어느새 빠져나와 굴렁쇠가 되어 푸른 초원을 굴러가고 있다 주..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08
우이동솔밭공원 우이동솔밭공원 洪 海 里 백년 묵은 천 그루 소나무가 방하착하고기인 하안거에 들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나무속 결 따라 신들의 궁전으로 가는 길울려나오는 금강경의 물결도 숨죽이고 흐른다수천수만 개의 푸른 붓으로 비경秘經을 새기고 있는노스님의 먹물은 말라붙어 버렸다땅속 천 길 이엄이엄 흐르는 천의 냇물이여내 마음의 다랑논에 물꼬를 열어 다오바람의 땅 낮은 곳을 따라 흐르는 온전한 물소리잠깬 물고기 한 마리 날아올라천년 세월을 면벽하고 나서 쇠종에 매달리니 바람이 와! 화엄華嚴의 춤을 춘다무거운 침묵으로 빚은 야생의 시편들눈 밝은 이 있어 저 바람의 노래를 읽으리라귀 밝은 이 있어 저 춤을 들으리라마음 열고 있는 이 있어 물처럼 흘러가리라저들 나무속에 숨겨진 비경을 나 어이 독해하리잠깐 꿈속을 헤매던속눈썹 허..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08
둥근잎나팔꽃 둥근잎나팔꽃 洪 海 里 아침에 피는 꽃은 누가 보고 싶어 피는가 홍자색 꽃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고 가는 허리에 매달려 한나절을 기어오르다 어슴새벽부터 푸른 심장 뛰는 소리---, 헐떡이며 몇 백 리를 가면 너의 첫 입술에 온몸이 녹을 듯, 허나, 하릴없다 하릴없다 유성으로 지는 꽃잎들 그림자만 밟아도 슬픔으로 무너질까 다가가기도 마음 겨워 눈물이 나서 너에게 가는 영혼마저 지워 버리노라면 억장 무너지는 일 어디 하나 둘이랴만 꽃 속 천리 해는 지고 타는 들길을 홀로 가는 사내 천년의 고독을 안고, 어둠 속으로 뒷모습이 언뜻 하얗게 지워지고 있다. - 『봄, 벼락치다』(우리글. 2006) * 나팔꽃 : 까페- '세상속으로'에서 옮김. 아침에 피는 꽃, 저녁에 버리리 / 김 세 형 그렇다! 저 눈앞에 환..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08
소심 개화素心開花 소심 개화素心開花 洪 海 里 한가을 둥근달 맑은 빛살로 바느질 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밤 도와 마름하여 첫날밤 지샌 새댁 정화수 앞에 놓고 두 손 모으다 바람도 자는데 바르르 떠는 하늘빛 고운 울음 영원 같은 거 엷은 고요 무봉천의 한 자락 홀로 맑은 지상의 한뼘 자리 젖빛 향기 속 ..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08
난꽃이 피면 난꽃이 피면 洪 海 里 Ⅰ 아무도 가지 않은 눈 위를 가고 있는 사람 모든 길이 눈 속으로 사라지고 길이 없는 이승을 홀로서 가는 쓸쓸한, 쓸쓸한 등이 보인다. Ⅱ 진초록 보석으로 날개를 달고 눈을 감고 눈을 뜬다 만 가지 시름이 적막 속으로 사라지고 가장 지순한 발바닥이 젖어 있다 ..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08
명자꽃 명자꽃 洪 海 里 꿈은 별이 된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별과 별 사이 꿈꾸는 길 오늘 밤엔 별이 뜨지 않는다 별이 뜬들 또 뭘 하겠는가 사랑이란 지상에 별 하나 다는 일이라고 별것 아닌 듯이 늘 해가 뜨고 달이 뜨던 환한 얼굴의 명자 고년 말은 했지만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었지 밤이 오지 않는데 별이 뜰 것인가 잠이 오지 않는데 꿈이 올 것인가. - 시집 『황금감옥』(2008, 우리글) * 명자꽃은 귀신을 불러오는 꽃이라는 말이 있다. 기억을 불러오고, 사람을 과거 속에 서성이게 하는 꽃. 그래서 옛 선비들은 명자꽃을 마당 안으로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을 기억 속으로 잡아끄는 꽃의 힘. 기억 속으로 잡아끄는 것들이 다만 명자 꽃뿐이겠는가. 시인은 원래가 몽상가들이다. 시인의 몽상은 하늘 안 어느.. 詩選集『洪海里는 어디 있는가』(2019) 2019.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