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560

<감상> 방가지똥 / 이동훈(시인)

방가지똥 洪 海 里 나는 똥이 아니올시다 나는 강아지똥이 아니올시다 애기똥애기똥 피어나는 노란 애기똥풀도 아니올시다 겅중겅중 방아 찧는 방아깨비똥도 아니올시다. 詩가 맛이 다 같다고 시가 맛이 다 갔다고 조·용·조·용 소리치는, 나는 향기로운 방가지똥 방가지방가지 피고 지는 방가지똥이올시다. 홍해리 시인은「고독한 하이에나」에서 새벽잠을 잊고 백지 평원을 헤매 다니면서 시를 추수하는 이를 자처한다. 백지선 해리호를 타고 시의 바다로 거친 물결을 밀고 나아갔다가 빈 배로 귀항하기 일쑤인 것이 그의「시작 연습」이다. 잘 죽기 위해서라도 쓰고 또 써서 마침내 “한 편 속의 한평생”을 이루는 게 시인이 꿈꾸는「명창정궤」의 시론이다. 방가지똥도 그렇게 해서 결실한 한 편일 것이다. 방가지똥의 방가지는 방아깨비의 사..

<감상> 죽순시학竹筍詩學 / 금강

죽순시학竹筍詩學 洪 海 里  죽순은 겨우내 제 몸속에 탑을 짓는다아무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물탑이다봄도 늦은 다음 푸른 비가 내려야 대나무는 드디어 한 층씩 올려 탑을 이룬다때맞게 꾀꼬리가 뒷산에 와아침부터 허공중에 금빛 노래를 풀면대나무는 칸칸마다 질 때도 필 때처럼 선연한동백꽃이나 능소화 같은 색깔의 소리를 품어드디어 빼어난 소리꾼이 된다. 숨어 사는 시인이 시환詩丸을 물에 띄우듯대나무는 임자를 만나 소리 한 자락을 뽑아내니산조니 정악이니 사람들은 이름을 붙인다몇 차례 겨울을 지나 대나무가 되고 난 연후의 일이다.   - 월간《우리詩》2019. 12월호. 마디마디 맺힌 말봄이 익도록 기다리다가한 번은 꿀꺽 삼키다가더는 참을 수 없이푸른 비 더듬어 쌓은 것이소리의 탑이라니. 허공에 풀린 새의 노래순에 ..

<감상> 시작 연습詩作鍊習 / 금강

시작 연습詩作鍊習 洪 海 里 엊저녁 난바다로 무작정 출항한 나의 백지선白紙船 해리호海里號 거친 물결을 밀고 나아갔다 오늘 꼭두새벽 빈배로 귀항했다 물고기 한 마리 구경도 못한 채 험난한 바다에서 흔들리다 파도와 달빛만 가득 싣고 축 처진 백기를 들고 투항하듯 쓸쓸한 귀항 나의 배는 허공 만선이었다. * 언제부터였을까. 허공만 채우고 돌아오던 것이. 만선의 꿈으로 살면서 빈배가 되기 일쑤인 것이 "무작정 출항" 때문일까. 물때를 탓할 것도 아니요 성긴 그물코를 의심할 것도 아니다. 일종의 버릇이다. 어두워지면 슬금슬금 나오는 물고기들의 유혹을 따라 난바다를 헤매는 이. 그러고 보니 새벽녘에 잠깐 뭔가 스친 것 같다. 연필로 노를 젓는 백지에 몇 마리 팔딱거리다가 지워진 소리, 주워 담을 수 없이 순식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