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560

움직이는 것은 바람으로 / 홍인우(시인)

움직이는 것은 바람으로 홍 인 우(시인) 시인께서 서명을 마치고 건네주시며 말씀하셨다. 이 시집 읽고 가장 마음에 닿는 거 한 편만 이야기해 줘요. 작고 낮은 음성이었다. 돌아오는 전철에서 시집을 펴들었다. 평소 책 읽는 습관대로, 다시 읽고 싶은 페이지는 위에서, 필사하고 싶은 부분은 아래에서 삼각으로 접으며 읽다가 어느 페이지에서 가슴 이 쿵 떨어졌다. 몇 번 몇 번을 다시 읽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와 다음 역에서 내렸다. 아마 창동역이었지 싶다. 너를 향해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해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꽃초롱 밝혀 걸고 금강경을 파노니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 홍해리 시인의 시 「금강초롱」 부분이다. 한 행을 한 연으로 삼았는지 행과 행 사이가 넓어 바람이 많이 드나 든다. 드나..

섭囁 -도란도란 / 洪海里 / 골프타임즈 2020. 5. 6. 정옥임

골프타임즈 2020. 05. 06. [정옥임의 시詩산책] 섭囁 - 도란도란 洪 海 里 술 마실 때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술 마시고 야비다리하지 말라고 '섭囁'은 주도酒道를 이르는 도주道酒, 술의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 술의 멋을 가르치는 훈장이거라 술 마셨다고 함부로덤부로 굴지 마라 두런두런대며 하동지동하지 말거라 입이 셋이고 귀가 하나라면 가볍고 나직하니 어찌 정다울 수 있으며 그 이야기인들 어이 귀에 들리겠느냐 입 하나에 귀가 셋이니 얼마나 좋으냐! '섭'은 토리土理 좋은 남도땅이 낳은 알[土卵]로 정성 다해 빚은 술이니 하늘 기운과 땅의 피가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지 않았느냐 '도란도란'은 투명한 액체의 불 바로 자연이 낳은 용암이다 눈으로 마시면서 마음으로 먼저 취하거라 지딱지딱 마셔 취할 것이 아..

아내의 새 / 洪海里 / 경상매일신문

경상매일신문 2019. 06. 03. 아내의 새 洪 海 里 한평생 나는 아내의 새장이었다 아내는 조롱 속에서 평생을 노래했다 아니, 울었다 깃털은 윤기를 잃고 하나 둘 빠져나갔다 삭신은 늘 쑤시고 아파 울음 꽃을 피운다 이제 새장도 낡아 삐그덕대는 사립이 그냥, 열린다 아내는 창공으로 날아갈 힘이 부친다 기력이 쇠잔한 새는 조롱조롱 세장 안을 서성일 따름 붉게 지는 노을을 울고 있다 담방담방 물 위를 뛰어가는 돌처럼 온몸으로 물수제비 뜨듯 신선한 아침을 노래하던 새는 겨울밤 깊은 잠을 비단실로 깁고 있다 노래도 지우고 울음도 잠재울 서서한 눈발이 한 생生을 휘갑치고 있다. 새장 안에 갇혀 사는 삶. 같은 조롱 안에서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아내가 측은하기만 하다. 좁은 공간에서, 어쩔 수 없어 견디며 힘..

어린아이 - 치매행 致梅行 · 4 / 경상매일신문

어린아이 - 치매행 · 4 / 홍해리 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치면 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어린아이가 된 아내의 이야기. 아직은 젊은 아내가 치매라는 병에 걸렸다. 생각할수록 어이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왜 하필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을까. 시인은 무던히도 가슴을 쳤을 것이다. 아내를 쳐다볼 때마다 초롱초롱하던 사람이 어쩌다가 저렇..

詩境의 아침 / 이종암 시인

어저께 홍해리 선생님 사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서도 찾아뵙고 예를 갖추지 못했다. 사모님 명복을 빌며 예전에 읽었던 홍해리 선생님의 사모님 관련 시 1편을 다시금 읽는 아침이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린아이 -치매행 · 4 홍 해 리 아내는 어린애가 되었습니다 내가 밖에 나갈라치면 어느새 먼저 문밖에 나가 있습니다 억지로 떼어놓고 외출을 하면 왜 안 와? 언제 와? 늘 똑같은 두 마디 전화기 안에서 계속 울고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낳은 어미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닌데 한평생 살 비벼 새끼 낳고 기른 죄 많은 지아비라서 나는 나이 든 아기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내 사랑하는 아가는 내게 매달려 한마디 말은 없지만 그냥, 그냥, 말문을 닫고 웃기만 합니다. - 홍해리 시집 『치매행致梅行』(황금..

잠포록한 날 / 전선용 시인의 그림으로 읽는 詩

그림으로 읽는 詩, 원고를 준비하면서 갑자기 홍해리 시인님의 '치매행'이 떠올라 「잠포록한 날」을 준비했다. 그림과 원고를 보내고 다음날 새벽, 홍해리 시인님의 부인께서 오랜 투병 끝에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아침에 듣게 됐다.잠포록하게 영면하시옵소서! 홍해리 시인님의 부인 지명순 여사께서 11월 12일 새벽 2시 반 소천하셨기에 알립니다.노원 하계역 옆, 을지병원 장례식장 6호실.발인은 14일 8시 예정입니다.자세한 사항은 우리詩회 다음카페를 참조하시면 됩니다. © 시인뉴스 포엠잠포록한 날/ 홍해리전선용 시인의 그림으로 읽는 詩전선 입력 : 2020/11/12  잠포록한 날/ 洪海里- 치매행致梅行 · 349  잠이 포로록 날아들 것만 같은잠포록한 저녁시도 때도 없는 아내가 잠을 잡니다새실새실 웃으며 뭐라고..

「치매행致梅行」 읽기 / 이동훈 시인

홍해리 시인의 사모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 시인의 치매행을 다시 읽어본다. 매화로 가는 길도, 집으로 가는 길도 당분간 캄캄하실 듯하다. 봄은 몸에서 핀다 - 치매행(致梅行) 99 / 홍해리 몸에 뿔이 돋아나면 봄입니다 뿔은 불이요 풀이라서 불처럼 타오르고 풀처럼 솟아오릅니다 연둣빛 버들피리 소리 여릿여릿 풀피리 소리 속없는 사람 귀를 열고 닫을 줄 모르는 한낮 봄은 몸에서 피어나는데 봄이 봄인 줄 모르는 사람 하나 있습니다 꽃이 꽃인 줄 모르는 사람 하나 있습니다. - 『치매행(致梅行)』, 황금마루, 2015. * 임채우 시인은 발문에서 홍해리 시인을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수염 덥수룩한 노인에 견주며, “노인은 기력이 다하지 않는 한 바다로 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홍해..

치과에서 - 치매행致梅行 · 331 / 이인평(시인)

치과에서 - 치매행致梅行 · 331 洪 海 里 아내는 밥도 못 먹고 누워만 있는데 나만 잘 먹고 살자고 새 치아를 해 넣다니 뼈를 파고 쇠이빨을 박다니 내가 인간인가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공간시낭독회 2020. 9월. 제482회 인간으로서, 사람으로서 할 짓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있다는 것을 중심으로 자기 성찰의 의미를 짙게 새긴 시네요. 이미『치매행致梅行』 시집을 발간한 바 있고, 이 연작시를 끊임없이 써서 331편에 해당하는 이 시를 통해, 치매에 걸린 아내를 두고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시상이 너무 진솔 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더욱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하네요. 요즘엔 누구나 쉽게 하는 임플란트 기술에 의해 이빨 건강이 많이 좋아졌지요. 하지만 화자 는 아내의 처지에 비추어 치아의 건강을..

홍해리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시 3편

홍해리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시 3편 최길호 은혜의 창 ・ 1. 홍해리 선생이 시집 한 권을 보내왔다. 2020년 2월 20일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시이다. 시인의 22권의 시집 중 가장 막내가 될 것이다. 총 4부에 각 20편씩 8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2. 홍 해리 시인의 필체를 보니 참 많이 반가웠다. 문자를 드렸다. "보내주신 시집은 잘 받았습니다. 익숙한 선생님의 필체와 보내 주신 마음을 생각하니 선생님을 만난 듯 반가웠습니다. 책을 받고 느꼈던 감사와 기쁨을 선생님은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감사함으로 선생님의 마음을 따라가며 읽도록 하겠습니다. 더욱 강건하십시오." 3. 창가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시향에 젖었다. 시인의 마음에 내려앉아 향기롭게 익은..

이선용 시집『동백은 시들지 않는다』表辭

이선용 시집『동백은 시들지 않는다』 表辭 이선용 시인은 산 같고 바다 같은 사내였다. 우이동에서 가까이 살면서도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늘 곁에 있던 친구였기에 이런 글도 쓰게 되는 것인가. 그는 월간 《우리詩》를 통해서 시단에 얼굴을 드러내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러다 유고시집으로 등단을 해 시인이란 이름을 남기다니 참으로 안타깝고 아쉽기 그지없다. 등단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고 소용이 있을 것인가. 그런 것 다 접고 천상에서 별 같은 글로 지상의 못난 시인들을 깨우쳐 주시게나. 『동백은 시들지 않는다』를 읽어 보시라. 주변의 자연과 인사에 대한 사랑 아닌 시가 한 편도 없음을 알게 되리라. 천상에서 쓰는 그대의 시를 어느 누가 흉내라도 낼 것인가! - 洪海里(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