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미로 - 치매행致梅行 · 162 막막미로 - 치매행致梅行 · 162 洪 海 里 어쩌자고 아내는 막막한 미로를 자유로이 헤매는지 뒤따르는 나는 벽에 부딪쳐 하루의 일수도 못 받고 긁히고 까지기가 일쑤입니다 출구가 없는 막다른 골목길은 춥고 멀어 끝이 없지만 참고 가는 수밖에 길이 없습니다 손톱 하나 까딱하지 않는 ..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6.02
한밤중 -치매행致梅行 · 161 한밤중 -치매행致梅行 · 161 洪 海 里 시「다 저녁때」(치매행致梅行 · 1)를 쓸 때만 해도 아내는 참 순하고 착한 어른아이였습니다 지금은 나보다 더 거세찬 어른애가 되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막무가내 나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려 듭니다 잘못한 것도 없이(사실은 잘..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5.28
비우고 버리다 - 치매행致梅行 · 160 비우고 버리다 - 치매행致梅行 · 160 洪 海 里 훨씬 더 오래 산 나보다 먼저 아내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다 내려놓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는데 나는 아내가 내려놓은 것까지 몽땅 짊어지고 낑낑거리고 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바라보기만 해도 울렁거리던 가슴 물 건너간 지 오래 이제는..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5.25
<시> 늙은 밥 -치매행致梅行 · 159 늙은 밥 - 치매행致梅行 · 159 洪 海 里 아내와 마주앉아 아침을 먹다 보니 밥이 아주 많이 늙었습니다 피부도 거칠고 주름 지고 저승꽃도 보입니다 꽃이 피는 밥을 아침으로 먹습니다 저녁이 아니라 아침입니다 아침은 가장 신선한 시간인데 태어난 지 며칠이나 되는 늙은 밥입니다 늙은..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4.11
<시> 짓는다는 것 - 치매행致梅行 · 158 짓는다는 것 - 치매행致梅行 · 158 洪 海 里 반달 하나 하늘가에 심어 놓고 눈을 감은 채 바라다봅니다 먼 영원을 돌아 달이 다 익어 굴러갈 때가 되면 옷 짓고 밥 짓고 집 지어 네 마음 두루두루 가득하거라 내 눈물 지어 네 연못에 가득 차면 물길을 내 흘러가게 하리라 사랑이란 눈물로 ..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4.09
<시> 어른애 - 치매행致梅行 · 157 어른애 - 치매행致梅行 · 157 洪 海 里 아내는 다시 한 살이 되고 나서 다시 한살이를 시작하는 어른애가 되었습니다 어린이가 어른이가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가방을 메고 어른이유치원엘 갑니다 밤이면 품속으로 파고들어 팔베개를 하고 잠이 듭니다 우리 부부는 자귀나무 이파리처럼 ..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4.09
<시> 양파 - 치매행致梅行 · 156 양파 - 치매행致梅行 · 156 洪 海 里 한때는 맑은 속살이 눈물짓게 하더니,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전혀 속을 보여 주지 않았습니다 껍질을 벗기고 또 벗겨내도 양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듯 양파의 속을 일절 알 수 없습니다 아내는 ..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4.07
<시> 새벽 네 시 - 치매행致梅行 · 155 새벽 네 시 - 치매행致梅行 · 155 洪 海 里 새벽 네 시 아내가 2층으로 올라갑니다 불 꺼진 방으로 올라갑니다. "어디 가? 내려와!" "얘, 어디 갔어?" "걔, 여기 없어, 제 집에 있지!" 아내는 딸애가 시집간 것도 모릅니다. 엊그제 딸이 잠깐 들렀을 때 아내는 껴안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딸이 ..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4.02
<시> 봄날 한때 - 치매행致梅行 · 154 봄날 한때 - 치매행致梅行 · 154 洪 海 里 눈부신 봄날 한때 그만 됐다 해도 또 우는 새 꽃 지는데도 연습이 필요한가 그만 됐다 해도 또 지는 꽃 가는데도 연습이 필요한가 자발없다 쓰디쓴 나의 봄날.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3.28
<시> 접接 - 치매행致梅行 · 153 접接 - 치매행致梅行 · 153 洪 海 里 살구나무 대궁을 잘라내고 옆구리를 쪼개 매화 가지를 빚어 꽂고 칭칭 동여매면 살구나무가 매화를 품고 젖을 물린다 땅속에서 뽑아 올린 맑은 젖 그 힘으로 매화는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다 오목눈이가 저보다 덩치가 더 큰 뻐꾸기 새끼를 기르듯 살..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