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지기 - 치매행致梅行 · 182 가벼워지기 - 치매행致梅行 · 182 洪 海 里 "나 싫어?" "아니!" "나 미워?" "아니!" "나 좋아해?" "응!" "나 사랑해?" "응!" "그럼, 옷 갈아입자!" "응!" 이렇게 사랑은 가벼워지는 것인가 드디어 아내는 젖은 옷을 갈아입으며 웃고 있습니다.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6.04.23
꽃이 피다 - 치매행致梅行 · 181 꽃이 피다 - 치매행致梅行 · 181 洪 海 里 하루 종일 홀로 집을 지키다 주인이 돌아오자 꼬리 치며 기어오르는 강아지처럼 저녁에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내 목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벼 대며 키스를 퍼붓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젊은 연인이기나 한 듯 남녘으로부터 들려오는 꽃소식에 ..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6.04.05
얼음미라 - 치매행致梅行 · 180 얼음미라 - 치매행致梅行 · 180 洪 海 里 한겨울에 그것도 한밤중에 꽝꽝어둠 속으로 뛰쳐나가는 아내 문을 탕탕 두드리며 무작정 밖으로 달려나가는 아내 그래 나가자, 차라리 나가서 우리 함께 꽁꽁 얼어 버리자 허허바다나 허허벌판인들 어떻겠느냐 허허실실 웃다가 얼어서 미라가 되..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6.03.03
이게 나야? - 치매행치매행 · 179 이게 나야? - 치매행致梅行 · 179 洪 海 里 '나'를 찾아가는 세상에서 길을 잃은 사람 천지 사방, 허방을 허정허정 가고 있습니다. 어제는 나를 가리키며 "이게 나야?" 묻더니 오늘은 벽을 보고 같은 질문을 합니다 아내는 어느 나라에 있는 걸까요 어느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요 어디서 나..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6.01.22
그러려니 - 치매행致梅行 · 178 그러려니 - 치매행致梅行 · 178 洪 海 里 언젠가 내가 당신 곁에 없는 날이 오겠지요 아니면 당신이 내 옆에 없는 때가 오겠지요 해는 아침을 위해 붉게 지고 꽃은 다시 피려고 시드는데 길도 없고 불빛도 보이지 않는 세상 당신을 버리고 나도 버리고 모든 걸 다 놓아 버리면 끝인 것인가 ..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6.01.09
이리 와! - 치매행致梅行 · 177 이리 와! - 치매행致梅行 · 177 洪 海 里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손을 흔들고 거울을 두드리며 "이리 와, 이리 와!" 하는 아내 해가 떠도 어둡고 달이 떠도 깜깜합니다 꽃이 피어도 아프고 별이 반짝여도 따갑고 쓰립니다 새해라고 세상이 다들 환한데 아내의 저지레 뒷바라지를 하..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6.01.09
방심 - 치매행致梅行 · 176 방심 - 치매행致梅行 · 176 洪 海 里 방심은 금물! 방심放心이란 무엇인가 마음을 풀어 놓는 것인가 아름답고 친절한 방심芳心이라면 좋을 텐데 한순간 한눈팔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지뢰는 폭발합니다 새벽부터 대책 없이 지뢰 제거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세상은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12.15
지뢰 - 치매행致梅行 · 175 지뢰 - 치매행致梅行 · 175 洪 海 里 아내는 민첩한 지뢰 매설 전문가 순간적으로 신출귀몰하게 작업을 완수한다 지뢰는 답답한 속을 드러내기 위해 불쌍한 영혼이 만들어 내는 찰나의 작품 녀석은 자신의 위치를 밝히는 법이 없다 터지는 굉음도 없이, 물큰 폭발한다 아내는 자기에게 소..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12.02
들녘 - 치매행致梅行 · 174 들녘 - 치매행致梅行 · 174 洪 海 里 가을걷이 다 끝나고 나면 나는 가을 거지가 됩니다 불 꺼진 빈집에는 침묵의 울음이 찬바람에 사그라들고 길었던 기다림을 털어 버린 영혼의 눈썹 한 올 한 올 위로 눈이 내립니다 마지막 한 톨까지 새들에게 다 주고 난 빈 들녘이 마침내 가득해집니..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10.15
한가위 보름달 - 치매행致梅行 · 173 한가위 보름달 - 치매행致梅行 · 173 洪 海 里 아버지 어머니, 평안히 계시는지요? 아버지는 1978년에 가시고 어머니는 스물세 해 뒤에 가셨습니다. 그러니 두 분이 가신 지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올해도 지상엔 오곡백과가 둥글둥글합니다. 그러나 제 가슴은 흉년이 들어 추석 차례상도 차.. 시집『매화에 이르는 길』(2017) 2015.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