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84

<시> 죽순시학竹筍詩學

죽순시학竹筍詩學 洪 海 里  죽순은 겨우내 제 몸속에 탑을 짓는다아무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물탑이다봄도 늦은 다음 푸른 비가 내려야 대나무는 드디어 한 층씩 올려 탑을 이룬다때맞게 꾀꼬리가 뒷산에 와아침부터 허공중에 금빛 노래를 풀면대나무는 칸칸마다 질 때도 필 때처럼 선연한동백꽃이나 능소화 같은 색깔의 소리를 품어드디어 빼어난 소리꾼이 된다. 숨어 사는 시인이 시환詩丸을 물에 띄우듯대나무는 임자를 만나 소리 한 자락을 뽑아내니산조니 정악이니 사람들은 이름을 붙인다몇 차례 겨울을 지나 대나무가 되고 난 연후의 일이다.    - 월간《우리詩》2019. 12월호. 마디마디 맺힌 말봄이 익도록 기다리다가한 번은 꿀꺽 삼키다가더는 참을 수 없이푸른 비 더듬어 쌓은 것이소리의 탑이라니. 허공에 풀린 새의 노래순..

정곡론正鵠論

* 솔개 : http://cafe.daum.net/howillust에서 옮김.    정곡론正鵠論  洪 海 里  보은 회인에서 칼을 가는 앞못보는 사내안 보이는데 어떻게 일을 하는지요귀로 보지요날이 서는 걸 손으로 보지요그렇다눈이 보고 귀로 듣는 게 전부가 아니다천천히 걸어가면보이지 않던 것언제부턴가 슬몃 보이기 시작하고못 듣던 것도 들린다눈 감고 있어도 귀로 보고귀 막고 있어도 손이 보는 것굳이 시론詩論을 들먹일 필요도 없는빼어난 시안詩眼이다잘 벼려진 칼날이 번쩍이고 있다.    - 월간《우리詩》2019. 12월호.  * 과녁의 한가운데를 일컫는 정곡(正鵠)이란 말은 활쏘기에서 나온 말이다. 과녁 전체를 적(的)이라 하고 정사각형의 과녁 바탕을 후(候)라고 한다. 그 과녁 바탕을 천으로 만들었다면 포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