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정곡론正鵠論』(2020) 84

윤슬

윤슬 洪 海 里 대부도 가자 하고 오다 보니 선재도 사는 일 정해진 것 어디 있으랴 가는 곳도 모른 채 흐를지라도 사랑 또한 과연 이와 같아서 너와 나 가는 길 하나이거라 멀리서 반짝이던 작은 물비늘 밤새워 철썩이는 파도가 되니 때로는 밤 바닷가 홀로 앉아서 별도 달도 없어도 바달 품어라 갈매기도 다 잠든 선재도 바다 물결만 홀로 깨어 보채 쌓누나. 파도 환승 구역 자, 푸른 바다를 찾아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타고 오신 자전거, 오토바이 등 바퀴 달린 것들은 여기에 잠시 놓아두세요.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는 시원한 파도로 환승하세요. 파도 위에 올라타 근심 걱정 모두 날려 버리고 시원하게 앞으로 나아가세요. ―강원 양양군 잔교리 해변 -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동아일..

방가지똥

* 방가지똥/시집 : 이동훈 시인의 블로그(http://blog.daum.net/hunii70)에서 옮김. 방가지똥 洪 海 里 나는 똥이 아니올시다 나는 강아지똥이 아니올시다 애기똥애기똥 피어나는 노란 애기똥풀도 아니올시다 겅중겅중 방아 찧는 방아깨비똥도 아니올시다. 詩가 맛이 다 같다고 시가 맛이 다 갔다고 조·용·조·용 소리치는, 나는 향기로운 방가지똥 방가지방가지 피고 지는 방가지똥이올시다. 홍해리 시인은「고독한 하이에나」에서 새벽잠을 잊고 백지 평원을 헤매 다니면서 시를 추수하는 이를 자처한다. 백지선 해리호를 타고 시의 바다로 거친 물결을 밀고 나아갔다가 빈 배로 귀항하기 일쑤인 것이 그의「시작 연습」이다. 잘 죽기 위해서라도 쓰고 또 써서 마침내 “한 편 속의 한평생”을 이루는 게 시인이 꿈꾸..

만첩백매萬疊白梅

만첩백매萬疊白梅 洪 海 里 내가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그대가 날 맞이할 마중물을 마련케 함이려니 서두르지 마라 매화가 꽃봉오리를 한꺼번에 터뜨리지 않듯 느긋하게 기다리거라 우주가 열리는 찰나를 노량노량 기다리거라. 눈독 들이면 꽃은 피지 못하느니 지구가 도는 소리가 들리는가 우주가 움직이는 걸 느끼는가 나비가 날 듯 지구는 돌고 우주의 반딧불이 별들은 꽃이 필 때마다 반짝반짝 반짝이느니. 꽃 한 송이 속에는 사계가 들어 있어 꽃잎 한 장 피면 봄이요 두 개가 열리면 여름이 온 것이요 세 번째가 벌어지면 가을이요 또 한 장이 벌면 겨울이러니 한 해가 꽃 속에서 뜨고 꽃 속으로 저문다. 내가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꽃 한 송이가 버는 시간을 견디는 아름다운 순간 순간이 아니랴 매화가 하얀 꽃잎을 한 장 한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