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말 파도의 말 洪 海 里 흐름, 끝없는 흐름이 되어 쉬임없이 출렁이며 너에게 가고 싶다 상형문자로 솟아 있는 섬으로 울음을 태워 끊임없이 삼키면서 속으로 꿈틀대는 그리움 안고 파도가 되어 너에게 가고 싶다 네 속으로 헐떡이며 스며들어 찬란한 고립이 되고 싶다 쓰리고 아린 상처투성..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
그리움을 두고 그리움을 두고 가을이 깊어지면 마음의 거문고 줄을 적시다 세상에 귀를 열어 보라 꽃 지고 난 사이 허공길 걸어 내 갈 곳 어디런가 저린 삭신 풀어 놓고 눈뜨고 자며 뒤척이다가 속내 감춘 한줄기 바람 꿈꾸며 가다 숨길 멈춘 곳 시리리시리리 시리다 우는 천지간에 지천인 풀벌레소리 이미 한세상 내..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
세란헌에서 세란헌洗蘭軒에서 난잎에 고요처럼 내려앉는 먼지를, 마음으로 씻어주는 새벽녘, 때맞춰 화로에선 차茶ㅅ물이 끓는데, 화선지에 묵향墨香은 번지지 않고, 가슴에 그리움만 고요처럼 쌓이네.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
부드러움을 위하여 부드러움을 위하여 洪 海 里 물이랑 연애하고 싶다 물 가르는 칼이고 싶다 이슬아침 댓잎에 맺힌 적요로 빛나는 물이 스미듯이 자르는, 칼에 베어지기 전의 작은 떨림 그 푸른 쓸쓸함 한입 베어물고, 길 지우는 배경물로 살아나듯 칼 지우는 투명한 물이고 싶다.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
꿈꾸는 봄바람 꿈꾸는 봄바람 洪 海 里 깢깢깢, 까앚까앚, 까작까작까작! 혼사 준비로 번갈아 들락이며 집수리에 바쁜 까치 한 쌍의 울력다짐, 몰래 다가가서 문 두드리고 싶어, 내 몸의 모든 숨구멍 간질이는, 고사리 새순같이 도르르도르르 말리는 마음 한 자락, 나도 가시나무 우듬지에 집 한 채 엮네 ..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
달빛 속 풍경 달빛 속 풍경 너는 모자를 쓰고 있다 챙이 넓은 모자 위로 달빛이 칼날같이 쏟아지고 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잘생긴 말 한 마리 서리꽃 속을 가고 있다 바다를 버리고 온 파도가 흰 갈기를 날리며 온 섬을 휩쓸고 있다 달빛은 눈꽃 위로 내리꽂히고 온몸에선 단내가 난다 네 모자가 조금 기울었다 바..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
쪽빛 바다를 찾아서 쪽빛 바다를 찾아서 洪 海 里 가자, 가을 바다로 흘러가자 수평선 멀리 잠든 섬으로 가자 여름내 타오르던 피, 이제는 맑게 바랜 영혼으로 서늘하니 슬픔도 씻어버린 가을 바다로 가자 달맞이꽃 노랗게 웃고 있는 길 따라 배롱나무 연분홍빛 사위어가고 부용화 피어 있는 고속도로 갈대숲 시퍼런 둑길을 따라 하루 종일 달리고 달려 물빛 맑은 먼 남쪽 바다 여름 벗고 알몸으로 빛나는 바다를 찾아 연꽃처럼 피어 있는 섬을 찾아서 흩날리는 상념들 털어버리고, 별들이 아득해지는 밤바다에서 유서를 쓰듯 생각을 모아 바다에 묻고 수평선 하나 주워 목에 걸면 내가 나를 만날 수 있을까 나를 찾아 쪽빛 바다로 가자. - 시집 『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
등과 오동의 등 등藤과 오동梧桐의 등燈 洪 海 里 은적암 골짜기 백년 묵은 오동나무 연한 속살 속 까막딱따구리 보금자리 새새끼들 눈뜰 즈음 화안히 내걸리는 연보랏빛 꽃등! 등나무 줄기줄기 숭얼숭얼 늘어진 꽃숭어리 구름처럼 피어 외려 슬픈, 눈물빛 고요 뚝, 뚝, 떨어지고 있는 오오, 불륜의 연보..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
가련하고 연약한 별에서 가련하고 연약한 별에서 오른쪽 팔목을 다친 내가 기르는 왼쪽 난초밭에는 밤낮없이 별이 떠 있습니다 가슴이 가련하고 연약한 별입니다 백성들은 입술이 푸릅니다 내가 다가가면 심장이 두근두근, 파르르 떱니다 그들이 들고 있는 번쩍이는 비수 사이 나의 말들이 먼지처럼 날다 하릴없이 떨어지고 ..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