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408

죽음竹音

죽음竹音 洪 海 里 죽음이란 말이 왜 그리 무거운가 죽음은 대나무가 내는 소리가 아닌가 한 칸 한 칸 쌓아 올린 빈 탑마다 세상의 소리를 다 모았으니 그 얼마나 황홀한 궁전인가 날마다 펼치는 궁정음악회 우주의 소리란 소리 청아하고 애절한 소리를 다 모아 들려 주는 합창이니 죽음이란 얼마나 눈물겨운 공양이요 공연인가 백조가 마지막으로 들려 주는 울음이 아닌가 우리도 기왕에 한 말씀 남기려면 대나무 우는 소리가 어떨지 땅 속으로는커녕 대처럼 옆으로 뻗지도 못하고 무한 천공으로 치솟아 보지도 못 했으니 언제 세상 소리 다 모아 땅과 하늘을 이어 볼 수 있겠는가 대[竹]는 죽은 후에도 모든 소릴 뽑아내니 우리가 죽는다는 것도 죽은 대나무 소리를 따를 일이 아닐런가 마당가 몇 그루 오죽烏竹이 한겨울에 얼어죽었다 ..

장두전杖頭錢

장두전杖頭錢 洪 海 里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지사주팔자가 나쁜 것인지전생은 어디이고 후생은 어디인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모두 따로 있는 것인가제 속에 있는 마음은 어디 있는 것인가 과거도 내 기억 속에 있고미래도 내 생각 속에 있는데현재라는 지금은바로 내 마음 가슴속엔 청산이 솟구치고눈 아래 들판이 펼쳐지니내일에 갔다 와서 오늘을 살려몇 푼 챙겨  넣고 길 떠나네.

발바닥 성자

발바닥 성자 洪 海 里  하늘은 늘 머리 위에 펼쳐져 있었다해가 빛나고 달빛 별빛 아름다웠다언제나 땅을 밟고 있는 발그 발의 바닥그것은 밑바닥 성지였다발바닥은 한마디 불평도 없는내 몸의 종이었다 머슴이었다아니, 노예였다 좋게 말해 일꾼이었다 발바닥 세상은잠깐 피하면 되는 소나기라면 좋으련만땡볕이었다 폭우였다낙목한천 북풍한설이었다발바닥엔 햇볕 한번 든 적 없었다한평생 온갖 몸짐 마음짐 다 지고땀 흘려 나르다 보니 때만 만들었다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네 발바닥이라면발바닥이라도 될 수 있다면 어떨까그게 사랑일까사랑이 아닐 것인가발바닥은 천상의 주인이요천하의 임자, 죽음까지도 다 맡아 주는죽으면 가장 먼저 썩어 세상의 거름이 되는성자로다, 진정 울리지 않는 종이로다 발바닥의 때만도 못한 인간아내가 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