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詩人의 함부로詩 어쩌다詩人의 함부로詩 洪 海 里 함부로 쓰지 말고함부로 내보이지 말라 이게 시인가이러고 시인인가 그런 생각도 없이시랍시고 시인이랍시고 어쩌다 시인이 되어함부로 내갈기는 시 어쩌다 시인의함부로 쓴 시가 웃는다 시는 백두산이고 동해, 한라산이고 이어도시는 독도, 격렬비열도 몽블랑이고 북극와 남극태평양이 아닌가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12.08
프리다 칼로에게 / Frida Kahlo : 이석조 화백 그림. 프리다 칼로에게 洪 海 里 가늘고 길게 살자면서도그렇게 살아 뭣 하나 하고 짧고 굵게 살고 싶다마음 먹고 독하게 산들그것 역시 뭣 하나 하고 하루 하루 살아내는 일재미없고 답답하고 살 만큼 살았으니때가 되면다 놓고 가자 해도 그것 또한 뜻대로 되는가구질구질하기 그지없네 정답 없는 게 인생이라는데이리 산들 어떻고 저리 산들 어떠랴잘살아라 잘 살아라!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11.20
함박꽃 웃다 함박꽃 웃다 홍 해 리 삼 년 반을 누워만 있던 사람옆집 햇볕 잘 드는 마루에동네 노파들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추운데 왜 나왔느냐 물으니여전히 말은 못해도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어 있었다아니, 얼굴이 한 송이 함박꽃이었다손가락엔 보석 박인 금가락지가 끼어 있었다 그곳이 정말 멀긴 먼가 보다한번 오는데 한 해가 갔다. * 아내는 2020년 11월 12일 새벽 두 시 반에 이승을 떠남. 2021. 10. 28. 새벽 두 시 반경에 꿈으로 처음 옴. 마당에 나가니 구월 스무사흘 달이 중천에 떠 있었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10.28
독각대왕 독각대왕獨脚大王 洪 海 里 남의 일이 아니네 날이 날 버리지도 않았는데 문을 닫고 날 잠그다니 어느 여자 시인은 외출할 때마다 교통사고를 당하면 어쩌나 하고 다리속곳 걱정부터 한다는데 하루 한 끼 때우는 일 그게 그리 큰일인 줄도 모르고 한평생 살아온 것이 부끄러워서 밥 먹고 설거지도 못한 채 지저분하게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 하지만 내가 내 뒤처리까지 깨끗하게 다 하고 가면 더 미안해 할 일이 있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이렇게 떠나는 걸 이해해 다오 그래야 조금은 덜 슬퍼할 것도 같아 이 세상 정리 다 못하고 가고 싶어라. * 독각대왕 : 아주 괴벽하고 말썽 많은 사람. - 월간 《우리詩》 2022. 1월호.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10.17
오해 오해 洪 海 里 우리 집 하늘붕어가 바람이 났나 주인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누굴 홀리려는지 치앵 챙 챙 춤추고 있네 얼마나 간절했으면 벽에 부딪쳐 머리통이 다 깨졌을까 가만히 보니 벽만 시푸르둥둥 멍이 들었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10.17
자연님 전 상서 자연님 전 상서 洪 海 里 주춤주춤 노을이 지니, 새 물고기 짐승 벌레 풀과 나무의 세상에서, 놀 따라 나도 가고 있네요 절름절름, 자연님 고맙고 감사합니다.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10.13
멍 또는 개 같은 세상 멍 또는 개 같은 세상 洪 海 里 마음에 멍이 들면멍해지는가아니면멍 멍 멍개가 되는가 오늘도 머엉하다멍하니 하늘만 본다멍멍 멍멍멍 개 짓는 소리들린다 들린다 들린다 팔과 다리마다거무죽죽 푸르접접푸르죽죽 거무접접겉에는 피 맺히고속에는 탈이 나검푸른 멍이 들었다 개만도 못한 세상얻어맞고 부딪히며 살다 보니멍멍대다 멍멍거리다얼이 빠져 죄 없는 멍에를 메고 또 쓴다 이전泥田은 어디 있는가나도 개라도 되어 구투狗鬪를 하자. - 계간 《생명과문학》 2021. 겨울호(제3호).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10.13
죽음미학 죽음미학 洪 海 里 삶을 삶이게 해 주고삶을 삶답게 빛내 주는 물이요 공기인 것 같은또는 소금인 것 같은 가장 아름다운 칠흑의 빛잠 깨고 맞는 꼭두새벽 '~~~라면'과 '~~~ 텐데'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 옆으로 뿌릴 뻗는 대나무와밑으로 뿌릴 내리는 차나무가 수평과 수직을 이룬 다음이슬을 받아 빚어내는 한잔의 죽로차竹露茶 같은 죽음그 미학을 위하여! - 충청북도시인협회 2021년간집 《詩충북》 (2021. 12. 제5집)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09.16
9월 9월 洪 海 里 1.선풍기가 버림받은 계집이 되어한구석으로 밀려나 머쓱하니 앉아 있다. 2.에어컨이 멋쩍은 듯 물끄러니 내려다보고 버림받은 슬픔도 맛이 있어 높고 푸르다. - 박영대 기자(동아일보 2021.09.03.) 『푸른 시간의 발자국』(미간)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