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의 전설 난蘭의 전설 洪 海 里 너는 하늘을 나는 새였다 네 날개가 날다 지쳐 꽃이 되었다 뿌리로 변한 네 발도 하늘을 잊지 못해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한여름 삼복 중에 돋기 시작한 날개 가을을 날고 겨울을 돌아 해마다 봄이 오면 솟아오른다 하늘을 잡던 네 깃이 잎이 되었다 천년..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3
꽃이 피면 바람 분다 꽃이 피면 바람 분다 洪 海 里 꽃이 필 때 날씨가 따뜻한 것은 널 빨리 보고 싶은 내 마음 탓이고, 꽃 피면 어김없이 바람 부는 까닭은 산통으로 흘린 땀 식혀 주려는 뜻이다. 꽃이 피고 나서 추워지는 것은 오래 곁에 있고 싶은 네 생각 때문이려니, 춥다고 탓하겠느냐, 바람 분다 욕하겠느..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3
할미꽃 할미꽃 洪 海 里 생전에 고개 한 번 들지 못한 삶이었으니 죽어서도 여전하구나 있을 때 잘해! 라고 말들 하지 지금 여기가 극락인 줄 모르고 떨며 사는 삶이 얼마나 추우랴 천둥으로 울던 아픈 삶이었기 시린 넋으로 서서 절망을 피워 올려 보지만 자줏빛 한숨소리 우뢰처럼 우는 산자락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3
홑동백꽃 홑동백꽃 洪 海 里 내가 한 가장 위대한 일은 너에게 '사랑해!' 라고 말한 것이었다 젖은 유서처럼 낮은 울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는 네 입술이 내게 다가온 순간이었다 나를 덮는 한 잎의 꽃 아지랑이 아지랑이.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2
천남성 천남성天南星 洪 海 里 남쪽 하늘에 뜬 별을 보고 첫 남자를 그리워하다 죽어서 천남성이 된 코브라 같은 여자 천의 사내들[千男性]이 저를 거쳐갔다고 그래도 첫 남자가 그립다고 젓대 소리 들리지 않아도 상반신을 곧추세워 춤을 추었던 것인가 독을 뿜으려 고개를 흔들었던 것인가 온몸이 바소[披鍼]가 되어 사내들을 째려는 듯 째려보는 저 눈 슬픔으로 가득한 저 눈 이제는 하늘 한 번 올려다보지 못하는 천남성天南星으로 피어 있는 저 여자.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2
벼꽃 이는 것을 보며 벼꽃 이는 것을 보며 洪 海 里 내 몸속에는 몇 만 평의 무논이 펼쳐져 있는 것일까 몇 천만 포기의 벼가 소리 소문도 없이 짝짓기를 즐겼을까 하늘은 저 무량한 세상을 내려다보며 얼마나 흐뭇했으랴 바람은 또 포기 사이사이를 지나다니며 박수치고 축복했으리라 물은 물대로 바닥에서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2
맥문동 맥문동麥門冬 洪 海 里 연보랏빛 꽃방망이 하나씩 들고 아니, 온몸이 꽃몽둥이가 되어 벌 떼처럼 일어서고 있는 한여름날 늦은 오후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내 그립다는 말조차 모르는 사내 흠씬 두들겨 주기라도 할 듯이. - 시집『독종』(2012, 북인)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2
층꽃풀탑 층꽃풀탑 洪 海 里 탑을 쌓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나무도 간절하면 몸이 흔들려 한 층 한 층 탑사塔寺를 짓는다. 층꽃나무를 보라, 온몸으로 꽃을 피워 올리는 저 눈물겨운 전신공양. 해마다 쌓고 또 허물면서 제자리에서 천년이 간다. 나비가 날아와 몸으로 한 층 쌓고 벌이 와서 또 한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2
<시> 금강초롱 금강초롱 洪 海 里 1 초롱꽃은 해마다 곱게 피어서 금강경을 푸르게 설법하는데 쇠북은 언제 울어 네게 닿을까 내 귀는 언제 열려 너를 품을까. 2 너를 향해 열린 빗장 지르지 못해 부처도 절도 없는 귀먹은 산속에서 꽃초롱 밝혀 걸고 금강경을 파노니 내 가슴속 눈먼 쇠북 울릴 때까지. -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2
매화, 눈뜨다 매화, 눈뜨다 洪 海 里 국립4·19민주묘지 더디 오는 4월을 기다리는 수십 그루 매화나무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꿋꿋하게 서 있다 지난여름 삼복 염천의 기운으로 맺은 꽃망울 4월이 오는 길목에서 그날의 함성처럼 이제 막 터지려 하고 있다 두근거리는 가슴이 심상찮다 그날 젊은이들..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