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밤꽃 밤꽃 洪 海 里 비가 오자 뒷산의 밤꽃여자 집안으로 뛰어든다 기다리던 사내라도 있었는지 홀딱 벗은 알몸이다 백주 대낮에, 슬며시, 물큰한 냄새가 산을 가려버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밤꽃이 낮이라고 낮꽃이 되겠는가 홀딱 벗고 우는 검은등뻐꾸기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어디..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6.14
오동꽃은 지면서 비를 부른다 오동꽃은 지면서 비를 부른다 洪 海 里 온몸에 오소소 돋아 있는 반짝이는 작은 털 더듬이 삼아 오동꽃 통째로 낙하하고 있다 보일 듯 말 듯 아주 연한 보랏빛으로, 시나브로 동백꽃 지듯 툭! 툭! 지고 있다 처음으로 너를 주워 드니 끈끈한 그리움이 손을 잡는다 무작정 추락하는 네 마지막 아름다운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명자꽃 명자꽃 洪 海 里 꿈은 별이 된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별과 별 사이 꿈꾸는 길 오늘 밤엔 별이 뜨지 않는다 별이 뜬들 또 뭘 하겠는가 사랑이란 지상에 별 하나 다는 일이라고 별것 아닌 듯이 늘 해가 뜨고 달이 뜨던 환한 얼굴의 명자 고년 말은 했지만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었지 밤이 오지 않는..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詩> 찔레꽃에게 찔레꽃에게 洪 海 里 찔레꽃 피었다고 저만 아플까 등으로 원망하고 어깨로 울며 가더니 가슴에 눈물로 물거품 지어 물너울 치며 오는구나 슬픈 향기 자옥자옥 섭섭하다고 그리움은 그렁그렁 매달리는데 꽃숭어리 흔들린들 지기야 하겠느냐 푸른 잎 사이사이 날카로운 가시여 그게 어찌 네 속마음이..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황금감옥黃金監獄 황금감옥黃金監獄 나른한 봄날 코피 터진다 꺽정이 같은 놈 황금감옥에 갇혀 있다 금빛 도포를 입고 벙어리뻐꾸기 울듯, 후훗후훗 호박벌 파락파락 날개를 친다 꺽정이란 놈이 이 집 저 집 휘젓고 다녀야 풍년 든다 언제 눈감아도 환하고 신명나게 춤추던 세상 한 번 있었던가 호박꽃도 꽃이냐고 못생..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호박 호박 洪 海 里 한 자리에 앉아 폭삭 늙었다 한때는 푸른 기운으로 이리저리 손 흔들며 죽죽 벋어나갔지 얼마나 헤맸던가 방방한 엉덩이 숨겨놓고 활개를 쳤지 때로는 오르지 못할 나무에 매달려 버둥거리기도 했지 사람이 눈멀고 반하는 것도 한때 꽃피던 시절 꺽정이 같은 떠돌이 사내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개화開花 개화開花 바람 한 점 없는데 매화나무 풍경이 운다 아득한 경계를 넘어 가도가도 사막길 같은 날 물고기가 눈을 뜬다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꽃 피는 소리에 놀라 허공에서 몸뚱이를 가만가만 흔들고 있다 꽃그늘에 앉아 술잔마다 꽃배를 띄우던 소인묵객騷人墨客들 마음 빼앗겨 잠시 주춤하는 사이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등藤과 오동梧桐의 등燈 등藤과 오동梧桐의 등燈 洪 海 里 은적암 골짜기 백년 묵은 오동나무 연한 속살 속 까막딱따구리 보금자리 새새끼들 눈뜰 즈음 화안히 내걸리는 연보랏빛 꽃등! 등나무 줄기줄기 숭얼숭얼 늘어진 꽃숭어리 구름처럼 피어 외려 슬픈, 눈물빛 고요 뚝, 뚝, 떨어지고 있는 오오, 불륜의 연보..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관음소심觀音素心 관음소심觀音素心 그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살해한다 정수리에 총을 쏘기도 하고 비수를 가슴에 꽂기도 한다 눈물로 나를 익사시키기도 하고 악, 소리치며 물러서게 한다 그녀는 발가벗고 있다 온몸이 젖빛으로 흐르고 있다 눈과 둔부가 젖어 있다 손가락과 마음도 젖어 있다 그녀..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
봄[春]꽃과 꽃봄[見] 봄[春]꽃과 꽃봄[見] 1. 별것 아니네 지나고 나면 별것 있으랴 순간 견디지 못하고 피면서 지고 지면서 피는 부드러운 꽃을 위하여 내 너에게 잠깐 머물 때 하늘가 춤추는 금빛 아지랑이 참, 환장하것네 꽃은 피기 위하여 지는가 2. 지는 꽃을 보며 네가 내게 무슨 마음먹겠느냐 온종일 꽃비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09.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