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꽃 피고 지고 매화꽃 피고 지고 洪 海 里 심학규가 왕비인 딸 청이 앞에서 눈을 끔쩍끔쩍하다 번쩍 세상을 보듯 매화나무가 겨우내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이 아니라 천 등 만 등이 하나 둘 켜지면서 가지마다 암향暗香이 맑고 푸르다 다글다글 꽃봉오리가 내뿜는 기운으로 어질어..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7.02
<시> 동백 등불 동백 등불 洪 海 里 먼저 간 이들 길 밝혀 주려 동백은 나뭇가지 끝끝 왁자지껄 한 생을 밝혀 적막 허공을 감싸 안는다. 한 생이 금방이라고 여행이란 이런 것이라고. 지상의 시린 영혼들 등 다숩게 덥혀 주려고 동백꽃 야단법석 땅에 내려 다시 한 번 등을 밝힌다. 사랑이란 이런 거라고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3.04.21
<시> 꽃무릇, 꽃을 위하여 꽃무릇, 꽃을 위하여 洪 海 里 한겨울 내내 눈감고 누워 허위허위 널 기다린 세월이었다 너는 어디쯤 오고 있는가 텅 빈 지상은 햇빛 찬란한 지옥이구나 몇 번이나 달이 부풀었는지 그러다 소리 없이 봄날이 갔다 기다리는 것이 사랑이라고 뜬눈의 한 생, 목탁소리 한 번 들은 적 없으나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2.10.12
<시> 각시붓꽃 각시붓꽃 洪 海 里 무지개 피듯 양지바른 산자락 잠시 다소곳 앉아 있던 처자 일필휘지로 꽃 한 송이 그려 놓고 날이 더워지자 보이지 않는다. 어디로 갔나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도 소식이 없고 자줏빛 형상기억으로 남아 봄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네 기쁜 기별 기다리고 있네. * 각시붓꽃..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2.05.02
<시> 찔레에게 찔레에게 洪 海 里 사랑한다 한마디 해본 적 없다. 바라는 것 없으니, 널 그냥 바라다볼 밖에야, 난! * 시를 쓰는 내 친구에게 순정한 사랑이 하나 있었다. 사랑한다 한마디 해보지 못한 사랑이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술이 취한 어느 날 밤 전화로 말했더란다. "선미야, 사랑..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1.07.20
<시> 수련이 필 때 수련睡蓮이 필 때 洪 海 里 수련의 푸른 발자국 물 위에 뜨고 살며시 꽃을 피워 올리거든 천마天馬 한 마리 잡아타고 꽃 속 천리를 달려가 보라 하늘 끝까지 올라가 보라 시인이여 그대 갈 곳 어디련가 꿈속 천년 세상 끝까지 떠나라 떠나라 슬픔의 나라 눈물 속으로 무하유지향無何有之..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1.06.05
<시> 토끼풀꽃 토끼풀꽃 洪 海 里 사랑 하나 찾아 주유천하하다 돌아온 백수 이제 모두 끝내자고 막막히 하늘만 바라볼 때 초막암자 열린 사립 파르라니 웃고 있는 사미니, 사미니들. (1999)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1.05.28
<시> 처녀치마 벗다 처녀치마 벗다 洪 海 里 북한산 골짜기에서 업어온 지 십 년 해마다 도랑치마만 대고 만들어 쌓더니 마침내 치마 벗고 하늘몸 열었다 사월 초하루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슬픔 젖어 가슴 아린 엷은 자줏빛 새물내 나는 속살로, 몰래 꽃을 올리고 새실새실 웃고 있는 처녀치마 낮은 자리가 ..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1.04.11
<시> 담쟁이의 길 담쟁이의 길 洪 海 里 오직 길이라곤 벽뿐이어서 아니면 살아 있는 나무들이라서 담쟁이는 타고 오를 수밖에 없다 밤낮없이 수직으로 기어가는 길 높을수록 바람은 거세지만 타고 오르는 힘은 더욱 푸르다 하늘이 머리 위에 있으니 숨차다고 손을 놓을 수는 없다 바람아 불어라 흔들리는.. 꽃시집『금강초롱』(2013) 201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