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평론·시감상 553

파자破字놀이

파자破字놀이 홍해리(洪海里) 어느 해 가을날이었것다 시인 셋이서 우이동 '물맑'에 모여 장어를 굽는디 술 몇 잔에 불콰해진 산천에 취해 파자놀이를 하는디 이렇게 노는 것이었다 장어 '만鰻'자를 놓고 노는디, 한 시인은 "이 고기[魚]는 하루[日]에 네[四] 번을 먹고 또[又] 먹어 힘이 좋기 그만이라!" 하고, 마주앉은 시인은 "이 물고기는 맛이 좋아 하루에 네 번을 먹어도 또 먹고 싶으니라!" 하니, 그 옆에 앉은 시인은 "이 고기를 먹으면 하루에 네 번을 하고도 또 하고 싶다더라!" 하며,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면서 노는디, 장어의 힘이 그만이라고 자랑하고, 그 맛을 추켜세우기도 하고, 또 그 효능이 최고라고들 떠들어 대는구나, 가만히 보니 고기는 어두일미魚頭一味라는데 누가 떼어 먹었는지 머리는 보..

잉근내동인문학 / 장민정 시인

잉근내동인문학 - 장민정(시인) 오늘은 필사하기 좋은 시로 저의 졸시 「수막새에게」와 홍해리 님의 「접接」, 「몸과 맘」, 「옥잠화」, 그리고 박노해님의 「겨울사랑」 등을 소개했습니다. 우선 홍해리 시인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홍 시인은 현재 우리詩진흥회 대표로 계시구요. 청주 출생이며 고대 영문과 출신으로 우리 회원님들에게도 안면이 많은 분이십니다. 1969년 시집 『투망도』로 등단, 지금까지 시선집을 포함 20여 권의 시집을 출판하셨으니 다작하시는 분이 맞습니다. 다작인데도 한 편 한 편 소홀한 데가 없이 시편들이 완성도가 높아서 놀랍습니다. 특히 사모님께서 치매를 앓고 계신데 손수 돌보시면서 쓴 아내에게 보내는 사랑고백이 두 권의 시집으로 엮여 나왔는데 그 두 권의 시만 230여 편입니다. 놀랍지 ..

산수유 그 여자 / 정호순

산수유 그 여자 홍해리 눈부신 금빛으로 피어나는 누이야 네가 그리워 봄이 왔다 저 하늘로부터 이 땅에까지 푸르름이 짙어 어질머리 나고 대지가 시들시들 시들마를 때 너의 사랑은 빨갛게 익어 조롱조롱 매달렸나니 흰눈이 온통 여백을 빛나는 한겨울, 너는 늙으신 어머니의 마른 젖꼭지 아아, 머지않아 봄은 또 오고 있것다. ―월간 『우리詩』(2022, 5월호) -------------------------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비슷하다. 진달래보다도 더 일찍 피는 눈 속의 매화나 동백 말고는 초봄에 가장 먼저 피우는 것도 같다. 그러나 비슷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산수유꽃, 생강나무꽃은 우선 색깔이 노랗고 멀리서 보면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산에서는 산수유를 볼 수가 없고 생강나무는 깊은 ..

좋은 시 어떻게 쓸 것인가? / 임보 시인 /포항 2022.04.28.

* 행사를 마치고 그곳 대표들과 찰칵! * 차영호 시인의 대금연주. 지난 4월 28일 목요일 저녁 포항문협(회장 서숙희 시조시인) 포항문예아카데미(원장 차영호 시인)에서 주최한 임보 선생님 초청 특강이 있었습니다. 겸사겸사 홍해리, 전선용 선생님과 함께 내려와 강연 현장에 함께했습니다. 포항에 거주하는 우리詩 회원이신 차영호, 유진, 민구식, 방화선, 김봉구 시인들께서 특별히 마음 써 강연 전후 알찬 일정도 마련해주셨습니다. 차영호 시인의 다실에서 맛 본 오래 묵힌 진한 보이차 향과 그윽한 대금 연주, 유진 편집위원의 지인이신 도지민 소설가가 마련해주신 동해바다 파도소리 가득 밀려오는 오도리 숙소에서 민구식, 방화선 시인이 준비한 푸짐한 동해의 회와 직접 재배한 상추로 함께 한 식사, 밤 샌 아침 유진 ..

'독작하는 봄' 외 / 홍해리 : 이동훈(시인)

「독작하는 봄」 외 / 홍해리 2010. 9. 13. 홍해리 신작소시집 「독작하는 봄」 외 5편 독작하는 봄 앵앵대는 벚나무 꽃그늘 아래 홀로 앉아 술잔을 채우다 보니 무심한 바람결에 꽃잎 절로 날리고 마음은 자글자글 끓어 쌓는데 가슴속 눌어붙은 천년 그리움 절벽을 뛰어내리기 몇 차례였나 눈먼 그물을 마구 던져대는 봄바람 사랑이 무어라고 바르르 떨까 누가 화궁花宮으로 초대라도 했는가 시린 허공 눈썹길에 발길 멈추면 사는 일 벅차다고 자지러드는 날 햇빛은 초례청의 신부만 같아 얼굴 붉히고 눈길 살풋 던지는데 적멸보궁 어디냐고 묻지 말아라 네 앞에 피어나는 화엄花嚴을 보라 마저 피지 못한 꽃도 한세상이라고 꽃은 절정에서 스스로 몸을 벗는다 왜 이리 세상이 사약처럼 캄캄해지나 무심한 바람결에 꽃잎만 절로 날리..

산수유 그 여자 / 그림·감상 : 전선용(시인)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비슷하다. 진달래보다도 더 일찍 피는 눈 속의 매화나 동백 말고는 초봄에 가장 먼저 피우는 것도 같다. 그러나 비슷하다는 말은 어폐가 있다. 왜냐하면 산수유꽃, 생강나무꽃은 우선 색깔이 노랗고 멀리서 보면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산에서는 산수유를 볼 수가 없고 생강나무는 깊은 산은 아니더라도 산에 가야 만날 수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꽃모양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꽃이 다를 뿐 아니라 수피도 다르고 잎도 다르다. 산수유와, 생강나무꽃은 둘 다 진달래나 목련, 벚꽃처럼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우지만 산수유는 암수한꽃이며 생강나무는 암수 딴그루이다. 꽃 모양 또한 전혀 다르다. 생강나무꽃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암수 꽃 구분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작은 꽃들이 여러 개 뭉쳐 피며 꽃대가..

홍해리의 「명자꽃」과 마원의 「산경춘행도」

홍해리의 「명자꽃」과 마원의 「산경춘행도」 스페셜경제 기자명 심상훈 입력 2022.04.11 [심상훈의 오후 시愛뜰] 작가·인문고전경영연구가 이름만 얼핏 보고는 남잔 줄로 막연히 알았었다. 입때껏 남잔 줄 알았건만 ‘그’가 아니고 ‘그녀’라서 놀랐던 적 많다. 명자꽃 洪 海 里 꿈은 별이 된다고 한다 너에게 가는 길은 별과 별 사이 꿈꾸는 길 오늘 밤엔 별이 뜨지 않는다 별이 뜬들 또 뭘 하겠는가 사랑이란 지상에 별 하나 다는 일이라고 별것 아닌 듯이 늘 해가 뜨고 달이 뜨면 환한 얼굴의 명자 고년 말은 했지만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었었지 밤이 오지 않는데 별이 뜰 것인가 잠이 오지 않는데 꿈이 올 것인가. 마원, (산경춘행도(山徑春行圖)), 12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대북 고궁박물관 “진정한 분석은 분..

「산수유 그 여자」/ 감상 및 그림 : 전선용 시인

산수유 그 여자 洪 海 里 눈부신 금빛으로 피어나는 누이야, 네가 그리워 봄은 왔다 저 하늘로부터 이 땅에까지 푸르름이 짙어 어질머리 나고 대지가 시들시들 시들마를 때 너의 사랑은 빨갛게 익어 조롱조롱 매달렸나니 흰눈이 온통 여백으로 빛나는 한겨울, 너는 늙으신 어머니의 마른 젖꼭지 아아, 머지않아 봄은 또 오고 있것다. * 감상평 남녘에 봄이 진작에 도래했다고, 가서 꽃구경하라는 암시가 모락모락 피었다. 산동마을을 지나 구례로, 섬진강 따라 산책하듯이 봄을 만끽하는 일이야말로 제대로 계절을 맞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홍해리 시인의 「산수유 그 여자」를 누이와 어머니 마른 젖꼭지라고 했다. 계절이 흘러가는 동안 누구에게는 누이가 되고 또 누구에겐 어머니가 된다. 이 한 편의 시는 꼭 누구라고 지칭할 수..

홍해리 시선집『마음이 지워지다(놀북)』/ 김명림 시인

홍해리 시선집『마음이 지워지다(놀북)』 2021. 7. 15. 홍해리 시선집 『마음이 지워지다』(놀북, 2021) 나는 천사를 알고 있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면서 어떤 불평이나 쓴소리를 하지 않는 바보 같은 천사! 남편의 길고 긴 투병에 혼신의 힘을 다했던, 이제는 98세의 치매 여행 중인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선물한 보람이 있을 텐데. 시집을 받자마자 단숨에 다 읽었다. 슬픔이 아프다. 홍해리 시인의 이번 시선집은 시집 『치매행』을 시작으로 『매화에 이르는 길』 『봄이 오면 눈은 녹는다』 『이별은 연습도 아프다』에 실린 421편의 치매행 연작시 중에 119편을 가려 뽑았다. 시집 네 권에 실린 시들 모두 애틋하지만 그중에서도 아내를 바..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홍해리洪海里는 어디 있는가 홍해리 시詩의 나라 우이도원牛耳桃源 찔레꽃 속에 사는 그대의 가슴속 해종일 까막딱따구리와 노는 바람과 물소리 새벽마다 꿈이 생생生生한 한 사내가 끝없이 가고 있는 행行과 행行사이 눈 시린 푸른 매화, 대나무 까맣게 웃고 있는 솔밭 옆 마을 꽃술이 술꽃으로 피는 난정蘭丁의 누옥이 있는 말씀으로 서는 마을 그곳이 홍해리洪海里인가. ―시집 『비타민 詩』(우리글출판사, 2008) 넓고 큰 바다동네가 어디 있나? 홍해리洪海里는 봉숭아꽃이 만발하는 시詩의 나라 우이골 찔레꽃 속에 있다고 합니다. 우이골은 서울 강북구 삼각산자락에 있는 마을입니다. 우이동(소귀봉)이라는 동명의 유래는 동리 뒤에 있는 삼각산 봉우리 중에 백운봉과 인수봉이 우이동에서 바라보면 소의 귀처럼 생겼기 때문에 소귀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