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구멍은 왜 열려 있는가 숨구멍은 왜 열려 있는가 호수가 꽝꽝 얼어붙어 물 위와 물 밑을 차단해도 한옆 어딘가에 얼지 않는 숨구멍이 있어 호수가 숨을 쉽니다 아이들이 얼음을 지치다 미끄러져 들어가 물고기가 됩니다 숨을 놓은 영원이 됩니다 왜 아이들이 기댈 언덕이 물 밑에 없는지 잘 덖이고 덖인 후에야 몸을 버리는 ..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산벚나무 꽃잎 다 날리고 산벚나무 꽃잎 다 날리고 ―은적암隱寂庵에서 洪 海 里 꽃 피며 피는 이파리도 연하고 고와라 때가 되면 자는 바람에도 봄비처럼 내리는 엷은 듯 붉은빛 꽃 이파리 이파리여 잠깐 머물던 자리 버리고 하릴없이, 혹은 홀연히 오리나무 사이사이로 하르르하르르 내리는 산골짜기 암자터 기..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황홀한 봄날 황홀한 봄날 洪 海 里 우이도원牛耳桃源 남쪽 100년 묵은 오동나무 까막딱따구리 수놈이 딱딱딱, 따악, 따앆, 따앜, 빨간 관을 자랑하며 동쪽으로 문을 내고 허공을 찍어 오동나무 하얀 속살을 지상으로 버리면서 집짓기에 부산하고, 암놈은 옆의 나무에서 따르르르, 따르르르, 옮겨 앉으며 딱, 딱, 딱, 먹이를 캐고 있다 새들마다 순금빛 햇살에 눈이 부셔 물오른 목소리로 색색거리고, 연둣빛, 연분홍, 샛노랑 속에 세상을 오르고 내리면서 버림으로써, 비로소, 완성하는 까막딱따구리의 황홀한 봄날. - 시집『푸른 느낌표!』(2006, 우리글)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가을 서정 가을 서정抒情 1. 가을시詩 여름내 말 한마디 제대로 고르지 못해 비루먹은 망아지 한 마리 끌고 올라와 오늘은 잘 닦은 침묵의 칼로 목을 치니 온 산이 피로 물들어 빨갛게 단풍 들다. 2. 상강霜降 가을걷이 기다리는 가득한 들판 시인들은 가슴속이 텅텅 비어서 서리 맞은 가을 거지 시늉을 내네 천지..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저녁 한때 저녁 한때 洪 海 里 서리 하늘 찬바람 허연 억새꽃 귀밑머리 휘모리로 가는 세월을 매듭짓지 못한 채 흘리고 있어 예불 끝난 절 마당 한가로운가. 흰구름 점점이 펴 저녁 한때를 천년 침묵 속에 잠재우는데 한천에 날아드는 저녁 새소리 경전 한 장 넘기고 있다. - 시집『푸른 느낌표!』(우..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게릴라 전법 게릴라 전법 ― 누드 크로키 너에게 가는 길은 일방통행 순식간에 반짝이며 오가는 직선이다 나슬나슬한 너의 그곳으로 광속의 쌍창이나 수천 수만의 빛화살이 박힌다 생략할 것 다 잘라버려도 존재하는 것은 순수한 아름다움 너는 움쩍도 않고 있는 그대로만 보라고, 자늑자늑 움직이는 선을 따라 나..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아름다울 미「美」자「字」는 여자다 아름다울 미「美」자字는 여자다 ― 누드 크로키 · 1 洪 海 里 몸은 몸이고 마음은 마음이나 몸과 마음이 하나인 세상 여자는 한 편의 詩「美」字로 선다 그렇다 여자는 미美이다 한 편의 시詩요 한 권의 시집詩集이다 시의 집이다 시인이여, 그대의 탁한 눈으로 세상의 무엇을 노래할 수..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먹통사랑 먹통사랑 제자리서만 앞뒤로 구르는 두 바퀴수레를 거느린 먹통, 먹통은 사랑이다 먹통은 먹줄을 늘여 목재나 석재 위에 곧은 선을 꼿꼿이 박아 놓는다 사물을 사물답게 낳기 위하여 둥근 먹통은 자궁이 된다 모든 생명체는 어둠 속에서 태어난다 어머니의 자궁도 어둡고 먹통도 깜깜하다 살아 있을 ..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절창 절창 움츠린 겨울이 꿈을 안고만 있다 얼마나 쥐어짜야 눈이 내릴까 제 상처와 눈물을 다 풀어 속 깊은 그리움을 뿜어내려는가 생生의 불꽃은 하염없이 사그라들고 동지섣달 바람처럼 사라지는데 마지막 한恨을 뒤흔들 노래는 노을빛으로 산마루에 걸려 있는가 추억의 강물은 쉬임없이 흘러가고 강가..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
가벼운 바람 가벼운 바람 사람아 사랑아 외로워야 사람이 된다 않더냐 괴로워야 사랑이 된다 않더냐 개미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얼음판 같은 세상으로 멀리 마실갔다 돌아오는 길 나를 방생하노니 먼지처럼 날아가라 해탈이다 밤안개 자분자분 사라지고 있는 섣달 열여드레 달을 배경으로 내 생의 무게가 싸늘해 .. 시집『푸른 느낌표!』2006 2006.12.05